How Do We Know Bible is True(I): Ch 25

Categories: 이충현의 번역글

무신론에 있어서 잘못된 점은 무엇인가? 

무신론자들은 옷장으로부터 나오고 있으며,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점점 더 높이고 있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무신론자인 리처드 도킨스 교수는 그의 견해 동의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견을 표현하라고 독려하고 있습니다. The God Delusion 의 저자, 도킨스 교수는, “아이들의 부모와 그들이 속한 사회의 종교적 세뇌로부터, 아이들을 해방시키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무신론자들의 주장에 “대답할 수 있도록” 준비될 것입니까?

물질주의적 무신론은 가장 반박하기 쉬운 세계관입니다. 물질주의적 무신론자들은 자연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창조 세계를 감독하시고, 유지하시는 초월적인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많은 무신론자들은 그들의 세계관이야말로, 이성적이며, 과학적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물질주의를 포용함으로 말미암아, 무신론자들은 과학, 기술과 지식의 가능성을 파괴시켰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만약 무신론이 사실이라면, 무언가를 증명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유

이성적 사고를 위해서는 논리학의 법칙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들 중에는, 우리는 A라는 명제와 not-A라는 명제를 같은 시각, 같은 관계 속에서 함께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기술하는, 비모순의 법칙 (the law of non-contradiction) 같은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 차는 주차장에 있다. 그리고 내 차는 주차장에 있지 않다.”라는 문장은, 비모순의 법칙에 의해 거짓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이 법칙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법칙이 사실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비모순의 법칙, 혹은 그 어떤 이성적 사고의 법칙들이 존재해야 합니까? 기독교인들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이성적 사고의 절대적 기준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고 방식을 따라 사고하게 되어 있습니다. 논리의 법칙들은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방식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비모순의 법칙은 단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한 누군가의 의견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스스로 일관적인 성품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고 (디모데후서 2:13), 따라서 하나님이 우주를 유지하시는 방법이 필연적으로 비모순적일 것입니다.

논리의 법칙들은 생각에 있어서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불변하시고, 다스리시며, 물질적인 존재가 아니시므로, 논리의 법칙들은 추상적이고, 보편적이며, 변치 않는 독립체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논리의 법칙들은 물질로 구성된 것이아닙니다 – 그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적용됩니다. 논리의 법칙들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속성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논리적인 사고에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따라서, 성경적인 하나님 없이, 논리적인 사고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물질주의적 무신론에 있어서, 논리의 법칙들의 존재의 합리적 설명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물질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논리학의 법칙은 물질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논리의 법칙들은 무신론자들의 세계에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성적인 사고를 하려고 시도하려면 그러한 법칙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은 일관성이 결여된 것입니다. 그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빌려서 기독교적 세계관을 반박하려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의 관점은 이성적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주장에 따르면 존재할 수 없는 것들(논리의 법칙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논쟁은 공기의 존재에 관한 논쟁과 약간 비슷합니다. 공기가 실재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누군가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공기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훌륭한 “증거”들을 제시하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공기를 숨쉬고 있으며, 우리는 그의 말을, 공기를 통하여 전달된 소리로써 듣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의 주장을 듣고 이해하기 위하여, 그의 주장은 틀려야만 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에 있어서,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이 계셔야만 납득이 가능한 개념인 논리의 법칙을 사용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의 주장이 타당하기 위해서는, 그의 주장은 틀려야만 합니다.

무신론자들은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무신론자들은, “저는 충분히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저는 충분히 숨을 쉽니다. 그러나 저는 공기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것은 이성적인 답변이 아닙니다. 숨을 쉰다는 것은, 공기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공언이 아닌,  공기 자체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논리적 사고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공언이 아닌, 하나님을 필요로 합니다. 물론 무신론자들도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의 생각을 만드셨고, 그에게 논리의 법칙을 알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 이것이 바로 논점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시기 때문에 이성적 사고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도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의 세계관 하에서, 그들은 그들의 이성적 사고 능력에 관하여 설명할 수 없습니다.

무신론자들은, “논리의 법칙들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관습이다.” 라고 답변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관습은 (정의상) 관습적입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그것에 동의하기 때문에 그것이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 예를 들면, 운전 할 때, 길의 오른쪽으로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논리의 법칙들이 관슴적이라면, 다른 문화권에서는 다른 논리의 법칙들을 채용할 수 있습니다 (길의 왼쪽으로 운전하는 것처럼). 따라서, 어떤 문화권에서는, 당신 자신과 모순되는 것이 완벽하게 괜찮을 지 모릅니다. 어떤 사회에서는, 진리가 자기모순적일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명백하게,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에 논리의 법칙들이 단지 관습이라면, 그들은 보편적인 법칙일 수 없습니다. 만약에 논리의 법칙들이 관습이라면, 이성적인 논쟁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쪽은 단지 이성적인 사고를 위한 다른 기준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쪽 모두는, 그들의 임의적 기준에 따라 옳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은, “논리의 법칙들은 물질입니다 – 그들은 뇌 안의 전기적-화학적 연결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라고 답변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논리학의 법칙들은 보편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뇌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는 화성에서 모순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화성에는 그 누구의 뇌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만약에 논리의 법칙들이 단지 뇌 안에서의 전기-화학적 연결이라면, 그것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그들의 뇌 안의 연결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 무신론자들은 좀더 실용적인 답변을 하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논리적 법칙들이 작동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그것이 질문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논리의 법칙들이 작동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질문은 그들이 근본적으로 왜 존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어떻게 논리의 법칙들과 같은 이성적 사고의 절대적 기준들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우주가 오직 물질로만 이루어져 있다면, 법칙과 같은 비물질적인 것들이 존재할 수 있습니까?

마지막 대안으로, 무신론자들은 엄격한 물질주의적 관점을 포기하고, 물질이 아닌 보편적인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에 동의할 지 모릅니다. 이것은 엄청난 양보입니다. 결국, 누군가 비물질적이고, 보편적이며, 변치않는 무엇인가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는 하나님이 존재하실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양보가 무신론자들의 자세를 구할 수 없습니다. 그는 논리의 법칙들을 정당화 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들은 왜 존재합니까? 그리고 물질적, 물리적 세계와, 비물질적 논리의 세계의 접촉점은 무엇입니까? 다른 말로 하면, 어째서 물질적인 우주는 할 수 없이 비물질적인 법칙에 따라야 한다고 느끼는 것일까요? 무신론자들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변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세계관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임이적이며 따라서 비 이성적입니다.

반대: “논리의 법칙들은 우주의 자연법칙의 필연적 연장선상에 있고, 인류는 이러한 법칙들을 인지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충분히 진화한 것입니다.”

답변: 이 논쟁은, 논리의 법칙들은 말씀에서 계시된 대로, 성경적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것을 반영하고, 그 어떤 다른 관점은 실재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제기한 가정적 답변은 실질적으로 논리의 법칙들이 이 우주가 작동하는 방식의 반영이라는 추측입니다. 이 관점은 많은 이유들로 인해 쉽게 반박될 수 있습니다.

첫째, 논리의 법칙들이 물리적 우주의 연장 선상, 혹은 반영이라는 개념을 뒷받침하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연법칙과는 달리), 물리적인 우주를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논리의 법칙들은 사고하는 과정과 관련됩니다; 그들은 전제로부터 결론에 이르는, 올바른 “사고의 연결고리”를 묘사합니다. 예를 들면, 비모순의 법칙 (A 와 not-A는 같은 시각 같은 관계하에서 동시에 참일 수 없다)은 물리적인 세계 혹은 자연 그 자체를 다루는 것이 아닌, 개념을 다루는 것입니다. 논리의 법칙들은 물리적 우주의 특정한 상태나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 아닌, 개념적 관계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하게, 만약 논리의 법칙들이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우주의 반영이라면, 그들은 우주의 상태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이상한 결론을 도출하게 됩니다. 만약 논리의 법칙들이 우주의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면, 우주의 다른 부분은 다른 논리의 법칙들을 가지고 있을 것을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태양의 중심부의 상태는 지구의 표면의 상태와 매우 다릅니다. 만약 논리의 법칙들이 단지 우주를 묘사한다면, 우주의 각기 다른 부분들은 다르게 묘사되기 때문에, 논리의 법칙들은 장소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더우기, 만약 논리의 법칙들이 우주의 상태에 따라 결정된다면, 우주는 시간이 변함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법칙들이 시간에 따라 변할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논리의 법칙들이 불변한다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도 같을 것이라고 가정합니다. 이것은, 물론, 기독교 세계관에서 이치에 맞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해 존재하시고, 그의 생각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만약논리의 법칙들이 단지 물리적 우주의 연장선상에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우주의 알려지지 않은 지역이나 미래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아무런 근거를 가지고 있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이러한 것들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논리의 법칙들이 아려진 지역에서 항상 작동하고, 과거에 항상 작동해 왔었다고 반박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미 존재하는 근본적인 균일성을 가정하고 있지 않다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지역과 미래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그리고 일관적인 기독교인들만이 근본적인 균일성을 기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수학도 비슷하게,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고를 반영합니다. 자연 법칙들이 자주 수학적 공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하더라도, 수학은 자체는 물리적 우주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학은 자주 그 어떤 상응하는 물리적 실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개념을 다룹니다. 이러한 수학적 영역에서, 우리는 38차원의 형상을 고려하고, 초구체와 다른 형상들의 초용량을 계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들은,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3차원적 공간에서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수도 없지만, 완벽하게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논리의 법칙들(그리고 수학)은 양자 역학적 혹은 상대론적 속도에서도 깨지지 않습니다. 에너지와 질량은 정 반대가 아니며, 동가성 관계에 있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파장과 입자의 이중성 또한 진정한 모순이 아닙니다; 물체는 어떤 때, 어떤 면에서 파동처럼 행동하고, 다른 때, 다른 면에서 입자처럼 행동합니다. 시각과 감이 다를 때, 모순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대: “논쟁 중 하나는, ‘우주의 균일성이 우주의 성질 중 하나이다.’ 였습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당신도 말했듯, 가정입니다. 왜 우리가 이러한 균일성을 설명해야 합니까?”

답변: 그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성적이기 위해서입니다. 이성의 표시는 우리가 믿고 있는 것에 대하여 좋은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믿는바에 대한 이유를 가지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베드로전서 3:15). 두가지 종류의 비이성성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일관성이 없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임의성(이유를 갖지 않는 것)입니다. 당신은 진화론자들이 제게 왜 창조를 믿는지 물어보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약, “이유는 없습니다 – 그것은 그냥 진리입니다” 라고 대답한다면, 진화론자들은 이것이 임의적인 것이고 비이성적이라는 것을 올바르게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세계관하에서는), 그들의 일관성 혹은 논리의 법칙들에 대한 믿음을 올바르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따라서, 비이성적인 것입니다. 성경적 창조는 유일한 이성적 자세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그것만이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균일성과 논리의 법칙들 같은 것들에 대한 이유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안정성과 논리의 법칙들을 가진 가상의 우주를 제안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 역시 정당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논리의 법칙들이 불변하고, 지금껏 바뀌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가능합니까? 그리고 어째서 물질적 우주가 비물질적 법칙들을 따라야 한다고 느끼는 것일까요? 우리는 어떻게 법칙들이 진정 보편적이고 불변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까요? 성경적 창조론자들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가리킴으로써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 세계관을 떠나면, 이러한 질문들은 답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진화론자들은 아직도 왜 그들이 논리의 법칙들과 왜 그들이 그들이 가진 성질들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왜 물질적 우주는 그 법칙들을 어기지 않는가를 믿는 것에 대한 좋은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진실로 기독교로부터 이러한 개념들을 빌려야 합니다.

기독교 세계관은 단순한 가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식 자체를 가능케하는 세계관입니다 (잠언 1:7, 골로새서 2:3). 오직 그것만이 우리가 이성적 사고를 하는데 필요한 것들(논리의 법칙들 그리고 균일성)에 대한 정당성을 제공해 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독교를 믿는 좋은 이유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전제들 조차 이유를 필요로 합니다; 전제에 있어서는, 사실 이후에 이유가 제공되는 것입니다. 종합하면, 기독교적 세계관을 믿을 수 있는 좋은 이유는, 기독교적 세계관 없이는 우리는 이성적 사고 자체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a good reason to believe in the Christian worldview is that without it we couldn’t reason at all.)

결론

명백하게, 무신론은 이성적인 세계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신론자가, 그 어떤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가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것의 정 반대의 것을 먼저 전제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코넬리어스 밴 틸 박사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무신론은 신론을 전제합니다. (Atheism presupposes theism.)”. 논리의 법칙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 – 그 어떤 신적인 존재가 아닌 기독교의 하나님. 성경의 하나님만이 치식의 근본이 되실 수 있습니다 (잠언 1:7, 골로새서 2:3). 성경의 하나님이 물질이 아니시고, 다스리시며, 시간을 초월하신 분이므로, 우리가 물질이 아니고, 보편적이며 변하지 않는 논리의 법칙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자신을 인간에게 보이셨으므로, 우리는 논리를 알고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주를 만드셨고, 하나님이 우리의 정신을 만드셨으므로, 우리의 정신이 우주를 이해하고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뇌가 단지, 과거에 어떤 생존에 도움이 되는 가치를 지닌, 정신을 갖지 않은 진화적 과정의 결과물에 불과하다면, 왜 우리가 그것의 결론을 신뢰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습니까? 만약 우주와 우리의 생각이, 무신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단지 시간과 우연의 결과일 뿐이라면, 어째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까? 과학과 기술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습니까?

이성적인 사고, 과학 그리고 기술은 기독교 세계관 하에서 타당성을 가집니다. 기독교인은 이러한 것들에 대한 기반을 가지고 있는 반면, 무신론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신론자들이 어떤 것에 관하여 이성적일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성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논리의 법칙들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자신의 세계관 내에서는, 이성적임에 관한 그 어떤 이성적 기반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무신론자들은 도덕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믿는다고 주장하는 것에 따르면, 도덕성의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무신론자들은 걸어다니는 모순덩어리입니다. 그들은 생각하고 과학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생각과 과학을 가능케하시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기독교 세계관은 인간의 이성적 사고와 경험과 부합되며, 그것들을 이해 가능하게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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