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Do We Know Bible is True(I): Ch 18

Categories: 이충현의 번역글

라미닌과 십자가

제가 받는 질문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유명한 기독교의 상징 – 라미닌 단백질에 관한 것입니다. 라미닌은, 흥미롭게도,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터넷에서 찾아 보시면, 많은 웹사이트들에서, 라미닌 단백질의 그림이 들어간 티셔츠나 마우스 배드, 스티커, 커피 머그, 그리고 많은 다른 물품들을 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물품들은 주로 “위대한 디자이너는 항상 그의 표시를 남긴다” 혹은 “창조주의 지문” 과같은 구호들을 포함합니다. 분자생물학자로서, 저는 분명히 단백질에 관해 사람들이 흥분하는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단백질을 정말로 기독교의 상징으로 보아야 할까요?  

라미닌은 무엇인가?

라미닌은 인간과 동물의 세포 외부 물질을 구성하는 물질을 구성하는 하나의 단백질입니다. 세포외 물질( extracellular matrix) 은 세포 밖에 존재하며, 기관 안에서, 세포의 부착하거나, 세포를 지탱해 줍니다(물론 다른 기능들도 있습니다). 라미닌은 “팔 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라미닌과 연결되며, 천의 형태를 이루어 세포와 연결됩니다. 라미닌과 다른 세포외 물질 단백질들은 실질적으로 세포들 사이에서 “풀”과 같은 기능 하여, 세포들이 결체조직(connective tissue)의 바닥에 붙어 있을 수 있게 해 줍니다. 라미닌의 구조는 그 기능에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다른 단백질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라미닌에 생긴 유전적 결함으로 생긴, 한 종류의 선천적 근육위축병이 알려져 있습니다.

어떻게 라미닌이 기독교의 상징이 되었는가?

현대 기독교에서 꽤 일반적이 된 논란은 라미닌의 구조와 기능을 성경적 진리와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이 작고, 실질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단백질은 루이스 기글리오가 설교에서 사용한 후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라미닌의 주제는 많은 이메일과 블로그에서 바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여기 그중의 한 이메일이 있습니다:

“세상이 라미닌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모를 몇천년전, 바울은 다음의 글을 썼습니다 [골로새서 1:15-17]. 그리고 지금 우리는, 아주 문자적 차원에서 그것을 봅니다. 우리의 하나의 세포가 다른 세포로….십자가에 의하여….지탱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이것이 아담이 그의 첫번째 숨을 들이쉬기 오래 전, 라미닌 “풀”이 어떻게 생겼어야 할 것을 정확하게 알고 계셨던 창조주가 남기신 표시가 아니라고 저를 절대로 설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이메일을 쓴 사람에 따르면, 라미닌의 모양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절대적 증거입니다. 기글리오씨는 그의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그는 ‘내가 우주를 만들었고, 내가 마음을 만들었으나, 나는 너희 모두의 일생의 모든 상황을 자세히 알 수 있을 만큼 크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일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든, 너의 길이 얼마나 어렵든, 얼마나 밤이 깊든지간에, 너를 붙잡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리고 나는 네가 이 지상에서 살 때, 그 어떤 상황이 닥칠지라도, 너를 문자적으로 붙잡고, 안고 갈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따라서 당신들은, ‘그렇죠. 듣기 좋네요. 그러나 어떻게 제가 지금  저의 인생에서 사실이라는 것을 알죠?’ 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정말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분들에게 오늘 밤, 하나님이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여러분들을 붙잡으실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것은 인간의 몸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봄으로써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라미닌이라고 불리는 작은 단백질입니다.”

기글리오씨는 그리고 라미닌의 기능(풀)과 구조(십자가)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그는 이것을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라고 말씀한 골로새서 1:17과 연결시켰습니다. 그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이, 우리가 예수님이 만물을 붙들고 계시다는 진실을 알 수 있도록, 라미닌을 십자가 모양으로 디자인 하셨고, 몸 안에서 풀과 같은 특정한 기능을 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형태의 주장을 하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기글리오씨의 말씀에 대한 열정에 감사드리긴 하지만, 저는 이런 형태의 주장은 사용하기에 좋지 않다고 제안합니다. 커다란 문제는 이런 형태의 논쟁은 성경 외적인 이 성경의 진리를 아는 데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데 있습니다. 라미닌이 성경적 진리를 증명하는 데 사용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판단하기 위하여, 우리의 실수 많고 제한적인 이 세상에 대한 이해를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관찰하는 것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임을 보여주는 데 사용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리의 제한적인 관찰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것들을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우리의 궁극적인 기준으로 삼고 출발 할 때, 우리는 이성적이고, 증거를 이치에 맞게 해석할 수 있는 세계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

라미닌의 구조는 2008년까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이전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골로새서 1:17에서 제시된 진리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신뢰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만약 라미닌이 십자가 형상이 아니었다면, 골로새서 1:17의 진리가 퇴색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만약, 지금으로부터 5년 정도 후, 우리가 라미닌 단백질이 사실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면 (사실 어떤 전자현미경 영상은 라미닌이 십자가와 전혀 닮지 않았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골로새서 1:17의 진리가 바뀌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만물을 지탱하신다는 우리의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끝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저에게 라미닌이 십자가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이 매우 놀라우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확증이라고 말해 왔습니다. 어떤 기독교인 블로거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어려운 시간이 오거나, 인생의 폭풍우가 닥칠 때, 나의 육신을 붙들고 있는 것이 십자가 형상을 한 세포 단백질이라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영광스러운 일깨움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놀랍게 만들어 졌습니다.”

분자생물학자로서, 저는 인생의 폭풍우가 닥칠 때 제 마음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단백질의 모양이 아니라는 것을 솔직히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이 죄로 인해 저주받은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저의 실수하기 쉬운 마음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보다, 저는 하나님의 완벽하고, 실수와 오류가 없으신 말씀을 바라봅니다. 제가 수년간 암기했던 구절들이 살아서 움직이며, 저에게 하나님의 관심과 선하심을 일깨워 줍니다.

표적을 찾음

불행하게도, 이러한 – 우리의 증거에 대한 실수하기 쉽고 유한한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우선시하는-  종류의 논쟁은 오늘날 사회에서,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높습니다.
한 블로거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의 내면으로부터 나는 소리친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가? 하나님, 어디 가셨나요? 왜 나는 여기서 올바른 길에서 벗어난 것처럼 느껴집니까? 나의 인생이 깨어진 것 같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내가 이야기했듯이, 이메일을 정리하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누군가 나에게 보낸 비디오를 열게 된다. 그 비디오(기글리오씨의 라미닌 설교) 는 소망에 관한 강력한 일깨움이었다. 그 시기또한 완벽했다: 하나님이 내가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울부지던 그 순간, 나에게 하나님이 나를 들으신다는 메세지를 보내신 것이다. 나에게 그가 나를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일깨우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그는 이 힘든 시간동안 나를 지탱해 주실 것이다.”

물론 하나님은 그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확증하시기 위하여 사람과 상황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사람들은, 실재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하고, 창조주를 신뢰하는 것보다, “표적을 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 대학 전임 교수로서, 저는 대학생들과 지낸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저의 사무실에 와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표적”을 주셨기 때문에 전공을 바꾼다거나,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거나, 아니면 어떤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이야기했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들의 “표적”에 관하여 들은 뒤, 항상 일련의 질문들을 했습니다. 그들이 기도해 왔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는지? 그들이 성경을 연구해 왔는지? 그들이 영적으로 성숙한 멘토들과 이야기 해 보았는지? 보편적으로 이러한 질문의 대답은, 반 진심의 “Yes”이며, 그들은 곳, 다시 그들의 놀라운 “표적”에 관해 저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보이시기 위하여 표적을 사용하셨고, 그것은 성경으로부터 명백히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12 에서, 천사가 목동들에게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한 절절치 않게 표적을 구한 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마태복음 16:4). 오늘날의 “fast food”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것에 관해 “drive-thru” 를 선호합니다. 표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이해하며, 기도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다른 신자들과 의논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방법입니다.

젊은 기독교인들은, 대부분의 미디어와 공립학교를 통해 세속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주입받은 영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특별히 창세기). 많은 이들은 성경의 주장을 받아들이길 필사적으로 원하지만, 도움받지 않은 정신이 지식을 획득하는 최종적인 기준이라고 생각하도록 틀리게 배워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라미닌 단백질에서 쓰인 논증과 같은 것들이, 그들과 다른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울려 퍼지는 이유입니다. 한 블로거는, “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가 여기에 있고 내가 너를 붙잡고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메세지를 보내시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다.” 라고 했지만, 잠언 1:7은 우리에게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골로새서 2:3).

사람들이 성경적 진리인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하려고 할 때, 도움받지 않은 이성을 사용할 때, 무슨일이 벌어질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관찰합니다. 결과적으로, 많은 과학자들은 성경이 부활에 관하여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합니까? 물론 아닙니다! 과학과 인간의 이성은 무엇이 가능한지를 결정하는 한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한계이십니다(God is the limit). 성경말씀이 이러한 기적적인 사건을 이해하는 궁극적인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현대에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관찰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1세기에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셨는지 아닌지에 대하여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도움받지 않은 이성으로 시작하여, 우리 자신의 생각을 성경에 끼워 넣으며 읽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온갖 종류의 이상한 결론을 내리게끔 합니다. 예를 들면, 끔찍한 출혈과 열을 나게 하고, 보통 죽음에 이르게 하는 에볼라 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목동의 지팡이라고 불리는 모양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좋은 목자라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0:14). 만약 라미닌 단백질의 모양이, 그리스도가 만물을 지탱하신다는 성경적 진리를 지지한다면, 우리는 에볼라 바이러스의 형태로부터 좋은 목자에 관하여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까? 그리고 만약, 라미닌이 십자가가 아닌 검(sword)의 형태(에베소서 6:17, 히브리서 4:12) 를 나타낸다고 보지 않을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비평가가 라미닌에 대한 크리스찬이 쓴 블로그 글에 대한 답변을 남겼습니다:

이 단백질이, 도표화했을 때, 십자가 형상이라는 것은 근사한 일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것이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은, 성경의 하나님이나 예수님의 존재의 어떤 타고난 증거라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연구자가 썰매 모양의 물질을 발견한다면, 그것이 싼타 클로스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입니까? 이 문제에 관해 죽도록 싸워야 겠습니까? 아닙니다. 이렇게 가야 할 것입니다.

“와~ 이 물질은 썰매같이 생겼네!”

그리고 그들은 중요한 주제로 이동할 것입니다.

비평적인 사고가 생각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것을 제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비평적으로 사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실수를 범하기 쉽고 제한적인 해석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결론

로마서 1:20은 그가 만드신 것들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라미닌 단백질을 디자인하셨고, 그 구조를 만드셔서 그것이 기능을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그가 그렇게 디자인 하신 것입니다. 사실, 라미닌의 구조와 기능에 관한 초기의 연구결과 중 하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구형과 막대형의 부분은 4개의 팔을 가진 십자가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서 세포 위의 먼 거리 사이와 세포외 물질들 중의 요소들을 연결하는 데 적합합니다”. 라미닌의 모양이 하나님이 십자가를 보여 주시기 위하여 의도를 가지고 디자인하셨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골로새서 1:15-20은 아마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바울은 그리스도를 창조주로 묘사함으로 시작하고, 그리스도가 구속주가 되시는 것으로 이동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진리임을, 이것이 우리의 도움을 받지 않은 이성 때문이 아닌,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되었기 때문에 압니다.

 

Author: administrad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