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학

십 육칠 년전 남부지방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백인 여인의 피살 사건 후 이 여자와 얘기하고 있던 흑인 청년을 본 사람이 있었다는 증거로 처음부터 자신의 무죄를 끝 없이 부르짖었건만 모습이 비슷하게 생겼다는 어느 흑인 청년이 결국 살인죄명을 받고 13년 동안 억울하게 징역을 살다가 실제 범인의 자수에 의한 체포로 풀려나온 청춘을 망친 이 흑인 청년의 얘기는 수천가지의 가슴아픈 인종 차별의 하나의 사건에 불과 하다.

노아홍수와 패러다임의 전환

어떤 사실을 자기 나름대로 그렇게 믿는 이유는 우선 그렇게 믿겨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믿겨지는 이유는 자신의 현재의 세계관에 따라 주위의 사물을 스스로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인식세계에 수 많은 견해에 대한 선택의 기회가 오고 갔다면 자신의 세계관 형성에 영향을 준 것이 무수하다고 할 수 있다.

세계관은 가장 먼저 내가 누구인가를 정의한다. 자신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이해 한다. 그런 후에 보이는 모든 세계의 사물에 대한 의미를 정의하도록 한다. 여기에는 땅과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생물이 포함된다. 그리고 모든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의미를 또 정의 한다. 내세의 문제 즉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해다. 그런 면에서 우주의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차례대로 기술한 성경은 자신의 세계관 형성을 충족시키지 못할 어떤 부분도 없다. 또, 한가지 확신하는 것은 성경적인 세계관의 정답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기독인이면 마땅히 성경적인 세계관의 소유자여야만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윈주의에서 신다윈주의까지

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의 기원이 하나님의 창조에 의해서 일까? 아니면 자연 발생적인 진화에 의해서 일까? 창조의 산물이라면 창조자의 존재와 창조의 목적을 전제하게 되는 반면에 진화의 산물이라면 이를 전제하지 않게 된다. 전자는 유신론적인 접근이고 후자는 무신론적인 접근이다. 물론 하나님이 진화과정을 이용했다는 어설픈 타협이론도 있지만 이것은 어느 한 이론도 분명히 이해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등장한 태도다.

진화론은 찰스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이 출판됨으로써 널리 보급되고 생명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이론으로 등장하게 됐다. 부모의 바램과 달리 다윈은 의학이 아닌 신학을 하게 되는데, 신학 학위를 받자마자(22세) 영국 해군함 H.M.S. 비글호의 세계탐험에 5년 동안 박물학자로 합류한다(1831-1836). 이 탐험 중 다윈은 동태평양에 있는 갈라파고 섬에서 방울새(핀치)들의 부리가 여러 종류인 사실을 관찰한다. 20여 년 후 그 때의 관찰을 바탕으로 진화론 이론을 전개하여 출판한 책이 ‘종의 기원’이다.

고운 모양도 없고

배꼽은 흔적이고 여기에는 열 달의 숨은 얘기가 있다. 연결되어 있었던 탯줄의 끝에 간직 된 사연은 이렇다.

수정된 난자가 이제 두개의 세포로 분열되면 그 중 하나는 태아의 몸이 되고 다른 하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태반으로 발전한다. 어미의 몸안에 다른 하나의 개체가 생겨 열 달 동안 모체의 모든 부분을 공유해가려면 처음 순간부터 엄청난 일이 일어나야 한다. 먼저 자궁벽이 수정란 착상에 최적한 조건을 이루도록 변화되어야 한다. 또 모체의 조직이 새로 생긴 개체의 다른 조직을 배척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모체의 면역 시스템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 야한다. 여기에 문제가 있을 때 착상이 불가능하다. 이것을 위해 태반은 먼저 각종 호르몬을 즉각 분비하는 기관이되어야 한다.

“있으라”

생명의 기원에 대한 연구는 과학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생명의 기원은 관찰하거나 실험할 수가 없다. 달리 말해서 생명이 창조되는 것을 지켜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성경에는 “있으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매 만물이 순간적으로 있게 된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