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016ACT-s

확률과 우연이 하나님과 어울릴까?

진화 순서뿐 아니라 진화 과정까지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창조과학자나 지적 설계 운동가들이 확률을 통해 진화의 불가능성을 설명하는 자세까지 비판하기도 한다. 아래가 그 예들이다.

“우연이라고 설명되는 현상이 설계를 배제한다고 생각하나? … 신이 우연한 사건을 이용하여 특정한 사람이 복권에 당첨되게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즉 신이 그렇게 의도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성경을 보면 이런 예가 많다. 하나님이 제비 뽑기를 통해 자신의 뜻을 알려 주는 경우가 꽤 있다. 제비를 뽑아서 한 사람이 당첨되는 것은 과학적으로 볼 때 외부의 통제나 방향성 없이 발생하는 우연한 사건이지만, 하나님은 그 사건을 사용해서 자신의 뜻을 드러내신다…”1

“이처럼 무작위적(또는 우연)이라는 단어의 과학적 사용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아무런 모순 없이 어울린다.”2

“하나님은 제비 뽑기나 유전자 돌연변이와 같은 특정 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나도록 설계해 두셨다. 하지만 일부 무작위적 현상이나 모든 무작위적 현상에 대해 하나님은 한 가지 특정한 결과가 나오도록 정해 놓으셨을 수도 있다.”

“확률적으로 대단히 희박해보이지만, 우주의 여러 특성은 생명이 존재하기에 정확히 조율되어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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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품과 타협이론

타협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 들은 ‘우주와 생물 진화를 인정 하고 진화 이론을 수용한다’ 고 하며하나님께서수십억년동안 생존경쟁, 적자생존, 자연선택 등의 과정을 통해 진화와 멸종 을 허용하셨다고 주장한다. 또 는 “지질 시대를 그대로 인정한다” 라고 말하며 창조와 멸종을 수없이 반복 하셨다고 한다. 이와 같이 타협 이론에서 가장 쉽게 드러난 문제점은 이들이 주장하는 바가 성경 기록과 모순되는 것인데, 특별히 성경 전체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바꾸거나 부인한다는 점 이다. 아래는 성경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하여 일관되게 보여주는예들이다.

1.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다.
‘거룩’이란 의미는 불완전, 죄, 피조물과의 구별된 완전하고 깨끗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의미 한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 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출 15:11)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 나님같은반석도없으심이니이다”(삼상2:2) 하나님께서는 창조를 마치시고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다(창 2:3). 자신의 성품을그피조물에 그대로 드러내셨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그분은 흠이 없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하지 않은자들을 심판하실수 있으시다.

2. 하나님께서는 거짓이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거짓말하지않으신다.그분은추측하 지 않으신다. 실험도 하지도 않으시며 그런 시도를 할 필요가 없다. 하위의 것부터 만드실 필요도 없고 그렇 게 하지도 않으셨다. 단지 옳은 일만 하신다. 우리를 속이지 않으신다. 과거에 없었던 일을 있었다고 하지 않으시고, 있었던 일을 없었다고 하지도 않으신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신 분은 후회도 없으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유일하게 무한히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분 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없으시도다.”(민23:19).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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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아버지가 둘인가?

예수님의 족보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서로 다른 이유

창조과학 사역은 단지 창조에 대한 부분 뿐만 아니라 결국 성경의 무오성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과학 영역뿐 아니라 성경 전반에 걸친 질문을 받을 경우가 종종 있다. 여기서 다룰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의 예수님 족보가 다른 이유에 대한 질문은 그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두 족보는 겉보기에도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중복되지 않는다. 특별히 이 두 족보를 보면 얼듯 보기 에는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의 아버지가 두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먼저 족보 전체를 보자면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하향식으로 내려가서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로 끝을 맺는다. 반면에 누가복음은 “예수께서 가르치심 을 시작할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로 시작해서 상향식으로 올라가 “아담 그 위는 하나님”으로 마무리한다. 아브라함부터 두 족보를 비교하면 다윗까지는 서로가 맞아 떨어지지만 다윗 다음부터는 전혀 다른 족보가 이어진다. 마태복음은 다윗 다음으로 솔로몬이 등장하며 왕들이 이어지지만, 누가복음에는 나단이 등장하며 왕 이 아닌 사람들로 이어진다. 마태복음에서 왕들의 이름은 여고냐(=여호야긴, Jeconiah)를 끝으로 사라지게 된다(마 1:11). 이는 여고냐의 악한 행동 때문에 다윗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시 없을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그대로 사용 한 것이다.“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는 그(여고냐)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렘 22:30). 그러므로 여고냐 다음 사람 부터는 왕은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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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론적 진화론의 시작은

지금까지 수회에 걸쳐 진화론의 등장과 함께 만들어진 여러가지 유신론적 진화론에 대하여 다루어 왔다. 그렇다면 이런 유신론적 진화론은 어떤 역사적 변화에서 일어났 을까? 중세 말에 교회가 타락했을 때 유럽에서는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교 회 안에서의 각성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교회 밖에서의 변화다. 교회 안에서 성경으 로 돌아가려고 했던 몸부림이 바로 종교개혁(1517년)이며, 한편 비슷한 시기에 교회 밖 에서도 일어난 변화를 계몽주의라고 부른다. 계몽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성에 대 한 신뢰이다. 이 두 변화가 일어난 때부터를 우리는 근대라고 부른다. 근대의 시작인 계 몽주의가 태동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을 한 명 꼽으라면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카르트(프랑스, 1596-1650)이다. 잘 알려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 재한다”라는 그의 말은 계몽주의 철학의 근본 원리가 되었다. 즉 사고하고 있는 자신 을 첫 시작으로 본 것이다.

이성이란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에게 넣어주신 참으로 귀중한 사고의 능력이지 만, 이는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질 때에만 바르게 사용된다고 성경은 말한다. “여호 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beginning, 시작)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 는 것이 명철이니라”(잠 9:10) 즉 여호와를 통하지 않은 지식과 지혜는 이미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며 결국 미련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데카르트가 말한 “생 각하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말은 성경이 말하는 순서와 반대이다. 실제는 거꾸로 “존 재하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바른 순서이다. 자신을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을 먼저 인식하고 난 후 생각하는 것이 순서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자신이 존재하지도 않는 데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존재가 먼저이고 생각이 나중이다. 하나님 을 뒷전에 놓은 교만한 발상에도 불구하고 이 짤막한 문장은 유럽 사람들의 사고의 자세를 바꾸는데 중요한 획을 긋는 명언(!)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18세기부터 자연 과학에도 향을 주기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과거를 알고자 하는 역사 과학 역까 지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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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 가설 – 창세기 전반부가 시?

1800년도 말에 진화론교육으로 인해 기독교인들도 지구의 나이가 수천 년보다 훨씬 오래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성경이 기록된 그대로 사실이라는 생각에 회의를 갖게 되었다. 이 흔들리는 기독교인들은 여기에 두 가지 자세를 취하였다. 하나는 진화론과 “절충”하려는 것과 다른 하나는 “회피”하려는 자세이다. 지난 호까지 다루었던 유신론적 진화론류 즉 간격이론, 점진적 창조론, 다중격변론 등은 모두 수십억 년의 지구 나이를 말하는 진화론과 절충하려는 타협이론들이다. 실제로 이런 이론들은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면 과학적으로나 성경적으로 양쪽에 모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반면에 진화론적 접근을 회피하고자 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이론이 나왔는데 이제부터 다루고자 하는 구조 가설(Framework Hypothesis, 또는 골격 해석)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1924년 네델란드 신학자인 누릇지즈(Arie Noordtzij)에 의해 시도되었고 약 30년 후에 클라인(Meredith Kline)과 리더보스(N. H. Ridderbos)에 의해 각각 미국과 유럽에서 인기있는 이론이 되었다. 구조 가설은 한마디로 창세기를 역사적 사실이 아닌 문학 장르로 보며 상징이나 시적 표현을 찾으려는 시도다. 구조 가설은 최근 구약 신학계에서 창세기를 해석하는 가장 인기있는 방법이며 가장 마지막 시도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그러나 이들이 진화란 단어를 언급하지 않아서 그렇지 구조 가설을 주장하는 근본적인 동기는 성경이 역사적 사실로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런 시도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창세기의 창조 주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젊은 지구론자들을 논박하는 것이 이 글의 중심 목표입니다…. 시간의 틀에 관한 결론은, 우주의 기원에 대한 가설을 세우는 데 있어서, 과학자들은 성경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입니다” 라고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