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Naturalism): 보이는 것의 유혹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보며 ‘누구를 닮은 것 같다’ ‘누구처럼 행동한다’ ‘누구 이미지가 풍긴다’ 라는 식의 표현을 쉽게 한다. 그만큼 우리는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 일 것이다. 반면에 성경은 이와 상반된 자세를 요구한다. 보이는 것(visible) 이전에 보이지 않는 분(invisible)이 첫 현실(reality)이 될 것을 요구한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의 시작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이다. 앞선 <성경과 세계관> 칼럼에서는 교회가 타락함으로 인해 교회 밖에서 발생한 계몽주의를 다루었고, 지난 3월에는 계몽주의의 연장선에서 등장한 ‘신은 존재하지만 나에게 영향은 주지 않는다’는 이신론(理神論, deism)에 대하여 다루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신론의 이분법적 신앙은 성경이 말하는 신앙이 아니며, 믿어야 할 논리성도 약하기 때문에 얼마 안되어 하나님을 떠난 무신론(無神論, atheism)으로 쉽게 넘어가고 만다(본인들이 인지하든지 못하든지, 성경의 하나님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이신론도 무신론이다).

자연주의(自然主義, Naturalism)
이신론에 이어 가장 먼저 등장한 대표적인 무신론적 철학은 자연주의라고 할 수 있다. 자연주의는 단어 자체가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를 배제하고 보이는 자연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철학이다. 순서상으로 이해하자면 자연주의는 앞서 다룬 이신론에서 하나님을 제외시켜버린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을 배제시켰 으므로 이신론적 철학자의 대부분은 자연주의자로 돌아섰다. 아래는 기존에 이신론을 주장하다 나중에는 자연주의자로 변한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철학자들의 표현 이다.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한 성경적 관점

현재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치사율과 함께 무엇보다도 전염 속도가 빠른 것이 위협적이다. 이미 수십만 명이 감염되었고, 수만 명이 사망했다. 앞으로 수백만 명이 감염되고 수십만 명이 사망하리라는 두려운 예측도 나왔다. 단지 수개월 전에만 하더라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이 세상에서 발생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이번 바이러스를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 현상인 팬데믹 (pandemic)으로 선언 하였다. 전염병은 성경에도 여러 번 언급된다. 개역개정 성경은 ‘전염병’ 또는 ‘염병’으로 번역되었으며, 영어로는 pestilence, pest, plagues 등으로 번역 되었다. 모두가 비슷한 단어이다. 또한 질병이나 재앙 등의 일종으로 전염병이 등장한다.

하나님을 떠났을 때 사용하시는 전염병
성경에서 전염병의 첫 등장은 출애굽 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고, 언약을 배반할 경우,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게 될 것을 경고하셨다. 그런데도 주의 말씀을 청종치 않으면, 앞의 징벌에 일곱 배를 더하며, 그래도 여전하면 이에 일곱 배를 또 더하며 이때 ‘전염병’도 함께 보낸다고 경고하셨다(레26:1-26). 다른 한 번은 출애굽 동안에 가나안 땅에서 정탐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이다. 정탐꾼들이 ‘거주민들은 신장이 장대한 자신들보다 강하기 때문에 이길 수 없다’는 허약한 말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모세에게 항의했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전염병으로 이 백성을 쳐서 멸하겠다고’고 진노하셨다. 그러나 모세의 간곡한 간청으로 전염병의 시행을 거두셨다(민 14:12).

이처럼 전염병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경고하실 때 여러 번 등장한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잊고 악을 행하면 전염병으로 멸한다고 하셨다(신 28:21). 선지서에 보면 하나님을 잊고 악을 행할 때에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멸하겠다‛(렘 14:12)와 동일한 구절이 수십 번이나 등장한다. 칼, 기근, 전염병 모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며 전염병도 그 중에 하나였다. 대상이 단지 이스라엘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 같이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하리니”(렘 44:13),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렘 28:8) 와 같이 다른 나라에도 동일하게 사용하신다. 예수님께서 세상 끝의 징조를 언급하실 때도 전염병이 등장한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눅 21:10, 11).

창세기 홍수(Genesis Flood) 공동저자 존 휘트컴 박사 소천

지난 2월 5일 창세기 홍수(Genesis Flood, 1961) 공동 저자인 존 휘트컴(John Whitcomb, 1924~2020, 미국) 박사가 소천하셨다. 향년 95세.

1961년 존 휘트컴과 헨리 모리스(Henry M. Morris) 박사에 의해 공동 집필된 <창세 기 홍수: 성경 기록과 과학적 의미> (Genesis Flood: The Biblical Record and Its Scientific Implications)는 창조과학의 고전이 되어 현대 창조론 운동의 기초를 세우는 기념비적인 책이다. 저자인 두 분은 이 책을 통해 창세기 홍수의 과학적, 성경적 증거와 함께 수십억년을 말하는 진화론의 문제점을 효과적으로 비판하였고,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현대 창조과학 사역의 시발점을 이루게 된다.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당시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던 창조과학 사역이 구심점을 갖게 되었고, 1963년 창조연구회(Creation Research Society)에 이어 1970년 창조연구소(InstituteforCreation Research)가 출범하기 까지 이른다. 아울러 교회가 창세기부터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휘트컴 박사는 1924년 워싱턴 D.C.에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하여 역사 지질학과 고생물학을 공부했으며 학위는 역사학으로 받았다. 대학교 1학년 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했으며, 이때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1948년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후 그레이스 신학교(Grace Theological Seminary, 인디애나주)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중국으로 갈 계획을 세웠으나 선교의 길이 막히며, 1951~1990년까지 약 40년 동안 그레이스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게 된다. 이때 젊은 지구 창조론과 함께 구약과 히브리어를 가르쳤다. 그는 신학교에서 은퇴한 후 1992년 Grace BrethrenChurch International을 설립하며 성경을 변증해왔다.

성경과 세계관(6) 이신론무신론으로 가는 징검다리

지난 호에서는 교회가 타락함으로 인해 교회 밖에서 등장한 계몽주의, 즉 교회와 성경을 벗어나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철학의 등장에 대하여 다루었다. 계몽주의는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배제해버렸기 때문에 얼마 안되어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자연주의(naturalism)로 이어졌다. 자연주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를 배제한 분명한 무신론이다.

무신론으로 넘어간 자연주의를 다루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이신론(理神論, deism)이다. 이신론이란 창조자인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그 하나님이 자신의 삶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는 사고이다. 즉 하나님을 마치 시계처럼 우주를 만든 존재로 인정하면서도, 만드신 다음에는 우주나 우리의 삶에 전혀 관여하지 않는 존재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더 이상 역사의 주관자도 아니며 기적도 행하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 따로 사람 따로의 이분법적 신앙이다.

‘자연주의’는 설명이 필요 없는 무신론이다(이 글에서 무신론은 ‘성경’의 하나님을 버린 자세를, 유신론은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유신론’에서 ‘하나님은 없다는 무신론’으로 바로 넘어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 이는 자신이 믿고 있던 존재를 바로 버린다는 것에 대한 어떤 두려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한동안 자신이 믿고 있던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옳은지 고민도 하고 그 신앙을 버리게 되는 핑계가 필요한 데, 그 과정이 바로 ‘나에게 관여하지 않는 신’을 믿는 이신론이다. 이와 같이 이신론은 유신론에서 무신론으로 넘어가는 과정인 일종의 징검다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상관하지 않는 이신론적 하나님은 필요하지도 않고 엄밀히 하나님도 아니기 때문에 논리성도 없고 오랜 기간 지속되지도 않는다. 결국 얼마 안 되어 무신론적 자세로 쉽게 이동한다. 이신론적 자세는 시대적 분위기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믿다가 신앙을 버리게 되는 각 사람이 겪게 되는 개인적 과정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신론은 자신이 스스로 만든 신을 믿는 것이 기 때문에 이미 무신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신론적 위치에 있을 경우 사회나 대부분의 개인은 이 자세를 신앙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이신론적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존재할 뿐 아니라, 부모를 따라 출석하 는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자녀들의 모습일 수도 있다. 만약 이신론적 위치에 있을 때 유신론으로 빨리 돌아가지 않는다면 예외 없이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 오늘날 진화론적 교육으로 인해 성경에 대한 신뢰를 버린 자녀들이 신앙적 고민이나 교회를 떠나는 핑계가 있을 터인데, 이는 이신론적 신앙의 위치라 할 수 있 다. 이는 시대를 막론하고 크리스천 부모나 교회 리더가 반드시 감지하고 조치를 취해야 할 부분이다

성경과 세계관(5) 계몽주의

교회가 타락했을 때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그 타락했음을 알고 이에 반응한다. 중세 교회가 타락했을 때 교회 안에서의 변화는 지난 호에 다루었 던 종교개혁이다. 한편 교회 밖에서 일어난 움직임이 이번에 다루게 될 ‘계몽주의’이다. 종교개혁은 교회 안에서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몸부림인 반면, 계몽주의는 타락한 교회를 떠나 지성으로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탈 교회적 분위기(separation from church)에서 나왔다. 일반적으로 종교개혁과 계몽주의가 시작할 때부터 근대 (modern age)라고 부른다.

계몽주의는 ‘17~18세기 유럽에서 등장한 광범위한 사회 진보적 지적 운동’으로 표 현한다. 그러나 이는 계몽주의 쪽에서 바라보며 정의한 것이지, 성경적으로 보자면 교회와 성경을 배제한 인간의 지성을 통해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움직임이다. 종교 개혁은 중세 교회가 성경에서 멀어지는 상황 속에서 다시 진리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인 반면, 계몽주의는 교회가 타락하자 유럽이 복음을 받기 이전의 그릇된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자신들이 이를 인지하든 못하든) 자연적 결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쪽에서 보자면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했던 종교개혁이 계몽주의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