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31 December 2005

황우석 교수 사건을 바라보며

온 국민이 황우석 교수를 환호하며 pride of Korea로 떠받들던 금년 봄, 누구 하나 네거티브한 코멘트를 했다가는 매국노로 몰릴 분위기였던 그 때, 난치병 환자 치료의 새 길이 열렸다고 거국적으로 환호했던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창조과학회 웹 칼럼에 황우석 교수가 지향하는 줄기세포 연구의 윤리적 문제점을 지적 한 바 있다. 한 사람의 질병을 고치기 위해 다른 한 생명을 태어나게 하고 필요한 장기만 취한 후, 임의로 죽이는 행위는 생명윤리 상 그리고 성경적으로 옳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은 미국의 죠지 부쉬 대통령이 강조한 “Life is creation, not commodity (생명은 창조의 결과이지 상품이 될 수 없다)”에 잘 함축되어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핵치환으로 복제된 배아가 자궁에 다시 착상되어 자라게 되면 바로 복제인간이라는 엄청난 재앙과 비극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런 윤리적 문제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가들 조차도 주저주저 하며 망설이던 연구가 유독 한국에서만 온 국민과 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진행되었고 심지어 황우석 우상화 신드롬까지 창출되었다. 그 영향력이 어찌나 깊고 거세었던지, 그의 대부분의 연구가 과장과 허위로 점철되었음이 밝혀진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으려하지 않고 오히려 황교수를 두둔하고 있는 실정이다.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이와 같이 생명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인간복제 핵폭탄”으로 직결되어 인류를 혼돈과 멸망으로 치닫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꼭 필요하다. 로마 교황청은 최근 황 교수 사건에 대해 “한국 사회가 생명윤리에 반대해서 자신의 이익을 선택한 것은 위험한 일이고, 브레이크 없이 비탈길을 질주하는 것”이라며 한국인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환상을 경고했다. 특히 스그레치아 주교는 “우리는 어떻게 배아줄기세포를 얻기 위해 인간 배아를 파괴하는 특권을 ’과학의 권리’로 요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연구를 하기 위해서 허가를 받고 돈을 얻기 위해서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그들의 광적인 열의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나아가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배아줄기세포 연구보다 오히려 더 빠르게 진전되는 이유는 그것이 기대하는 세포로 분화되기 쉽고, 암을 발생시키지 않으며, 몸의 어디서든 손상된 세포와 장기를 치료하고 재생하는데 효과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며 “성체줄기세포가 윤리적, 의학적으로도 더 유용한 대안”이라는 가톨릭의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반전과 반전이 거듭된 이번 사건에서 필자가 가장 이해 할 수 없었던 부분은 난자 획득과정에 대한 숱한 거짓말의 반복, 그리고 2005년 사이언스지의 논문이 인위적으로 조작되었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진 시점에서 조차 “원천기술만 보유하고 있다면 무슨 문제인가? 오히려 황박사의 성공을 위하여 격려하고 키워줘야 한다”는 상당수의 국민적 반응이었다. 도덕 불감증과 성과지상주의에 젖어 있는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 듯 했다. 우연의 일치라고나 할까, 최근 같은 날, CNN에서는 북한의 달러위조지폐와 남한의 황우석 사건을 둘 다 국제적 사기사건이라며 특종보도 했다. 외신들은 잇달아 “한국 과학의 신뢰도 급격히 추락”을 보도하고 있는데도 한국 국민들은 “그까짓 거짓말과 논문조작이 뭐 대단한 문제냐, 세계 1등 기술을 가졌다는게 중요하지” 라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국민은 아직까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신뢰의 중요성에는 둔감하다. 그저 눈에 보이는 돈과 물질과 경제효과에 훨씬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금년도 기윤실(기독교 윤리 실천 협의회)에서 한국기독인이 회복하여야 할 최대의 도덕관으로 정직을 꼽았는지도 모른다. 한 번 잃어버린 돈과 기술을 회복하는 데는 약간의 시간이 걸리지만, 국제사회에서 한 번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댓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직 잘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매우 긍정적인 부분도 있었다. 한국 젊은 과학도들의 진리에 대한 열정과 순수성 그리고 자정능력이 그나마 만 천하에 보여졌다는 사실이다. 즉, 이 사건의 진실을 파해친 주역이 바로 한국의 젊은 과학자들이라는 것이다. 즉, 황우석 사건을 통하여 한국과학자 전체가 망신과 불신의 도마 위에 올라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과학의 미래의 밝은 부분도 함께 조명된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하여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들을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목적만 괜찮다면 어떤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OK”, 즉,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꿩잡는게 매다”는 의식의 팽배함이다. 이는 바로 우리나라 교육의 최고 문제점인 “어떤 수단/방법을 써서라도 1등만 하면 된다”는 신드롬과도 직결된다. “국익이나 민족의 자존감을 위해서라면, 그리고 엄청난 경제효과를 위해서라면 그 과정에 무슨 윤리적 문제가 있을지라도 괜찮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범국민적 윤리 불감증과 무분별한 일등지상주의 때문에 제보에 의해 왜곡된 진실을 밝혀 내려던 MBC PD수첩 방송자들이 오히려 매국노로 지탄을 받고 엄청난 누리군들의 공개처형을 받아야 했다 (그들도 결국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협박취재를 했다는 똑같은 모순에 빠졌지만). 이런 현상을 통하여 볼 때, 인터넷 강국인 한국은 작금 포스트모던 세대의 포퓰리즘의 몸살을 누구보다도 심하게 앓고 있는 듯 하다. 옳고 그른 것, 참되고 거짓된 것이 절대적인 진리/가치/윤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누리꾼들의 여론몰이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사사기의 암울한 시대현상의 근본적 문제점이 다시 고개를 쳐들고 우리나라에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하나님/절대적 진리)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21:25)

다음으로 이 사건은 한국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부풀리기 문화”의 산물이다. 즉, 하나 하나 내실을 다지며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기 보다는, 그저 실을 바늘 허리에 감고서라도 남보다 한 발짝이라도 앞서야 한다는 총체적 국민의식이 문제다. 그 빨리빨리 문화 덕분에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한강의 기적’과 ‘다이나믹 코리아’를 최단 시간에 생산해 내기는 하였지만, 장기적 안목으로 볼 때, 내실부재로 인하여 항상 무언가 불안하고 곳곳에 허점 또한 산재해 보인다. 또 이와 같은 엄청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려면, 앞으로는 ‘빨리빨리 문화’가 반드시 ‘내실탄탄 문화’의 제어를 받아야 할 것이다.

지난 몇 주 간 전 세계의 언론은 황 교수 사건을 ‘금세기 최대의 과학 사기극’으로 특종보도 하였지만, 사실 지난 200여년에 걸쳐 최대의 과학 사기극은 바로 다윈의 진화론이다. 하지만, 이 진화론은 황 교수 연구결과와 같이 실험실에서 재현하거나 증명 해 보일 수 있는 그런 참 과학이 아닌 자연주의 철학과 추론에 근거한 배경신념에 불과하다. 증명된 것이 하나도 없고, 그 문제점들 또한 가득히 산재 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사실로 과장되어 지금까지 생존해 있고 믿어지고 있는 일종의 신화이다. 이번 황우석 교수 논문의 참과 거짓을 낱낱이 밝혀 낸 젊은 과학도들의 열정처럼, 아직까지 금세기 최대의 과학 사기극으로 남아있는 진화론이 앞으로 진리를 사랑하는 크리스챤 과학도들의 열정에 의해서 그 거짓들이 하나 하나 밝혀지기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을 거부한 사람들의 연약함과 완악함을 동시에 볼 수 있다. 그들도 나름대로 질병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 날 같은 소망이라도 붙들려고 발버둥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황우석 교수같이 지식에 한계가 있는 연약한 인간이 그럴듯하게 제시한 질병치료의 소망에는 전폭적인 믿음을 가지면서도,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오셔서 부활의 증명까지 해 보이시며 확약하신 영생과 구원의 약속에는 냉담하며 조롱까지 하는 것을 보면 너무도 안타깝다. 그 얼어붙은 마음에 복음의 빛을 전해야 하는 해동제가 바로 우리의 입술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