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20 November 2004

지적설계 (Intelligence Design) 만으로 충분한가?

오늘날, 크리스천 과학자들 사이에 자연주의와 진화론에 대항하여 ‘지적설계(intelligence design)’라는 운동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은 또한 ‘쐐기운동(wedge movement)’ 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이는 젊은 지구, 6일 창조, 전지구적 홍수(global flood) 및 노아의 방주(Noah’s Ark)와 같은 진화론자들과의 대화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주제들을 피하는 대신, 단지 자연주의적 전제들 및 진화론의 느슨한 부분들을 파고 들어가는 ‘쐐기’로서 지적설계의 증거들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시함으로써 불신자들을 복음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 운동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창세기 1~11장을 인용하지 않고, 단지 지적설계만으로 창조를 제시하는 것이 복음전도의 더욱 유용한(effective) 방법일까요?

지난 창조과학운동의 역사를 살펴볼 때, 창세기를 중심으로 한 창조과학의 전개가 많은 불신자들을 창조주께로 돌아오게하는 계기가 되었고, 또 믿는자들에게는 확실한 신앙의 디딤돌을 제공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 진화론으로 세뇌된 과학자들이나 소위 인본주의 지성인이라 자처하는 불신자들에게는 오히려 심한 거부반응으로 나타난 면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창조과학 진영이 창조의 흔적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기보다는, 주로 진화론의 헛점을 비판하는데 주력해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최근 들어, 인간 유전자 설계지도 해독이나 정보이론 등의 발달과 함께, 생명의 지적설계에 대한 흔적 및 환원불가능한 생명체의 복잡성등을 학문적으로 설득력있게 제공할수 있는 발판이 마련 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해 본다면, 지적설계이론이야 말로 진화론과 학문적으로 대등한 싸움을 벌일 수 있는 바람직한 전략적 방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성경적 창조과학 보다는 지적설계이론이, 진화론적 인본주의 일색의 현행 교육과정에 그나마 일부라도 포함될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은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지적설계 운동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는 미흡한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적인 설계를 믿더라도 여전히 이슬람이나 뉴에이지의 신앙을 고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적 차원에서 본다면, 지적설계는 성경적 창조과학의 한 부분이어야지 독립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지적설계만으로 창조를 제시하는 전도방식의 또하나의 약점이 있다면, 이 피조세계 속에서는 전능자의 지적설계의 흔적도 분명히 보이지만, 또한 돌연변이, 병, 멸종, 불완전한 생체기관등 불완전한 설계나 현상들도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선하시고 전능하신 창조주가 설계하신 이 피조세계에 병과 고통과 죽음과 파괴와 무질서와 같은 불완전한 요소들이 충만하냐는 것입니다. 이는 지적설계자의 능력이 모자라든지 그가 선하시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창세기로 돌아가지 않고는 결국 이러한 반론들에 바른 대답을 할 수 없습니다.

“터 (foundation)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시편 11:3)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의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로새서 1:9)

즉, 성경과 창조의 과학적 증거(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증거할 수는 없지만, 진화론의 과학으로서의 문제점들을 지적함과 동시에, 창조의 손길을 과학적 안목을 통하여 추론하거나 볼 수 있음을 강조할수 있겠음)를 통합하지 않을 경우, 그 복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슬렘들도 전능하신 하나님과 그의 창조와 지적 설계를 믿고 있습니다. 단지,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참계시인 성경을 믿지 않고, 마호메트가 계시를 새로 받아 기록했다는 거짓계시인 코란을 믿고 있음으로 구원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특히 현대의 ‘뉴에이지 운동’이나, ‘진화론적 과학주의’에서도, 지구나 우주가 자기 스스로 조절하여 복잡해지는 것이 가능하도록 이끄는 우주적 큰 힘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힘을 지각있는 우주, ‘Mother Nature’, 또는 ‘Gaia’(그리스신화의 지구의 여신)라고 신성화하여 부르고 있습니다. 즉, 우주나 지구가 확률적으로는 불가능 해 보이지만, 그 안에 스스로 생명을 창출해 내고 진화를 일으킬 수 있는 신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과학의 가면을 쓴 21세기판 우상숭배입니다.

또한 많은 과학자들은 그러한 지적설계가 이 우주 어딘가 지구의 인간들 보다 훨씬 빠르게 진화한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외계인(alien)으로부터 유래했을 지 모른다는 믿음을 갖고, 지금도 그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서, 엄청난 예산을 써가며 우주에서 들어오는 어떤 모양의 전파이든지 포착-검토-분석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 (마태복음 17:17)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로마서 1:22)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로마서 1:25)

일전에 한국창조과학회 청년모임(NOAH) 홈페이지에서, 한 주제논문의 요지가 “복음이 들어가기 시작한 나라에서는 성경에 근거한 창조과학이 더 유효하고, 복음이 오랫동안 충분하게 자리잡힌 나라에서는 더 수준이 높은 지적설계로 창조론을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마치 지적설계는 고수준의 창조론이고, 성경에 근거한 창조론은 지성인들에게 잘 맞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사고 경향을 보여주듯, 서울대와 과학원의 창조과학회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최근 들어 성경적 창조론보다 지적설계에 더 큰 비중이 놓여 있는 것을 볼수 있었습니다.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지적 설계만을 말하는 것이 전략적으로는 유리 할지 몰라도 그것 만으로는 단지 부분적 성과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적설계는 성경적 창조론의 도움이 역할을 해야지, 그자체가 독립적으로 더 높은 자리에 놓여서는 않됩니다.

진화론자들은 창조과학자들에게 창조론은 신앙이지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교과서에 실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증명된 참과학 입니까? 무엇이 신앙이고 무엇이 과학입니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지적설계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창조와 성경을 같이 전해야 합니다. 오직 성경만이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여 주신 무오한 책이며, 그 속에 우주와 생명의 기원뿐만 아니라, 사람의 인생관을 바꾸고 영생에 이르게 하는 구원과 변화의 능력이 있음을 전하고 증거해야 합니다.

…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사도행전 14:15)

“여호와의 행사가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도다.” (시편 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