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24)- 땅 위의 생물의 창조
Friday, 6 February 2004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창 1:24)
셋째 날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드러난 땅에, 그리고 이미 식물들이 자란 땅을 채우시는 장면이다. 여섯째 날의 동물들은 다섯째 날 창조된 동물과 근본적으로 생화학적 구조나 생식과정이 동일하다. 성경에서는 여섯째 날의 동물들을 세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육축, 기는 것, 짐승이다. 여기서 육축(가축, cattle)은 길들이기 쉬운 동물, 짐승은 야생동물, 기는 것들은 그 외에 땅 위에 동물 즉 기는 곤충, 파충류, 양서류, 작은 포유류 등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노아홍수 이후부터 동물들이 사람을 피했다는 것은 홍수직후 하나님의 말씀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창 9:2)”에서 잘 알 수 있다. 즉 홍수 전에는 모든 동물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창조 시에 하나님께서 가축과 야생동물을 따로 구분하셨다는 표현은 흥미롭다. 이는 욥기에서 하나님께서 욥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 “들소가 어찌 즐겨 네게 복종하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네가 능히 줄로 들소를 매어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쓰레를 끌겠느냐? 그것이 힘이 많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하는 일을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 의탁하겠느냐? (39:9-12).” 여기 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동물을 지으시되 가축과 짐승의 용도를 다르게 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동물의 힘이 세거나 약한 정도를 보고 인간이 사용 용도를 선택하기 앞서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할지를 창조 때 이미 정하셨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생물분류법은 진화론적 사고에 많은 영향을 받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는 인간의 구미에 맞게 분류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분류법이 창조의 순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펭귄이나 타조는 생물학적으로 조류로 구분될 수 있으나 창조된 시기는 여섯째 날 이었음이 분명하다. 아직도 펭귄이나 타조가 날아본 적이 있다거나 미래에 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다면 이는 진화론적 사고가 남아있다는 것일 게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타조는 즐거이 그 날개를 친다마는 그 깃과 털이 인자를 베풀겠느냐?… 그러나 그 몸이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탄자를 경히 여기느니라(39:13, 18)”라고 말씀하신다. 즉 하나님께서 타조를 창조하실 때는 날도록 지으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말보다 빠르게 뛰도록 창조하셨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박쥐나 고래도 예외는 아니다. 고래나 박쥐도 포유류로 분류되지만 이들은 모두 성경적으로 나는 것과 기는 것이 창조된 다섯째 날 창조되었다. 고래가 육지에 살았던 증거도 없으며 가능성도 없다. 날아다니는 박쥐와 기어 다니는 쥐 사이에 어떤 중간단계 생물이 발견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럴 수도 없다. 곤충의 경우도 마찬가지 인데 진화론자들은 기는 곤충에서 나는 곤충으로 진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오히려 나는 곤충은 다섯째 날, 기는 곤충은 여섯째 날로 오히려 순서가 반대이다. 진화론은 파충류가 먼저 창조되었다고 하지만 성경은 새가 먼저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성경적 창조를 믿는 것이야 말로 아직도 남아있는 진화론적 찌꺼기를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인 것이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분류학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생물의 분류학에서도 진화론의 영향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지금의 분류학적 체계가 우리의 마음 속에 있다면 이를 통하여 우리의 내면에는 진화론적 순서가 자기도 모르게 남아있게 되며 그 편견을 통해 생물들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의 믿음이 중요하다. 왜냐 하면 우리의 마음 속에 진화론적 사고 즉 하나님이 창조를 하셨다 할지라도 진화 순서로 창조하셨다는 진화론적 생각을 벗어 버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 진짜 창조순서인 창세기 1장을 믿음으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진화란 말도, 진화의 순서도, 진화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종류대로만 창조하셨다.
또한 동물을 창조하시는 여섯째 날의 모습 어디에서도 생존경쟁, 약육강식 등의 잔인한 진화과정도 엿볼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모습으로 완벽하게 창조하고 계시는 그의 능력과 신성만을 보여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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