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재에서는 심리학자인 존 머니(John William Money, 1921–2006) 박사가 언급한 “동성애(homosexuality)”란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1869년부터 1948년 미국의 동물학자인 앨프리드킨제이(Alfred C. Kinsey, Ph.D. 1894-1956) 박사에 의해 그의 첫번째 연구보고서인 “인간 남성의 성적행동 (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이 발표되기 전까지의 기간에 걸쳐 동성애 연구에 대한 과학, 특히 자연과학, 의학 및 생물학적 접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전까지는 동성애를 주로 종교적, 도덕적 내지 법적인 관점에서 해석 하였으나 19세기인 1886년, 독일 정신과 의사이며 작가인 크라프트에빙(Richard Freiherr von Krafft-Ebing, MD, 1840-1902)박사의 “성적착란에 대한 연구(Sexual Psychopathy: A Clinical-Forensic Study)1”가 발표되면서 동성애에 대한 의학적 논의가 시작되었다. 에빙 박사는 이 분야의 연구를 통하여 “비정상적인 성적 행동과 이러한 행동의 법의학적 관점”에 있어서 그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또한 그의 연구는 1886년 첫 번째 출간을시작으로 2017년 철학자이며 성과학자이며 정신분석학자인 옌스 드 블레밍크(Jens De Vleminck, PhD)박사에 의해 에든버러 대학교 (University of Edinburgh)출판사의 저널 ‘정신분석과 역사’(Psychoanalysis and History)에 열두번째2 개정판이 출간되면서 에빙 박사의 연구는 총 238개의 인간 성 행동의 역사로 확대 되었다.

에빙 박사의 첫번째 출간에 이어 여러 편이 영어로 번역이 되면서 “가학적 성애 (sadist)”, “자학적 성애 (masochist)”, “동성애 (homosexuality)”, “시체 성애 (necrophilia)”, “항문 키스에 의한 성적 자극 (anilingus)” 등의 용어들이 소개되었다.사실 이 책은 정신과 의사, 일반 의사, 재판관들에 의해 법의학 참고서로 쓰인 책이며 동성와 양성 성행위에 대해 처음으로 연구한 첫번째 책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저서를 통하여 저자는 성범죄자들의 범죄를 판단할 때 그들의 정신 상태에 대해 고려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당시 이 저서는 성 도착증에 대한 의학적, 법률적 판단을 내리는 중요한 자료로 그 권위를 인정받았다. 또한 저자는 출산을 성적 욕망의 목적으로 간주했으며 어떤 형태이든 그저 즐기기 위한, 즉 출산과 연계되지 않는 모든 행위는 잘못된 행위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에빙 박사는 동성애적 성행위가 출산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을 어느 정도의 성도착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으로 간주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동성애의 본능이 너무 이른 자위행위에 의한 나쁜 버릇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에빙 박사는 뇌의 “성전환”으로 발전될 수 있는 생물학적인 변이, 임신의 배아기와 태아기를 동성애의 이론으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1901년 ‘연감: 성적 형태의 중간 유형’ (Jahrbuch für sexuelle Zwischenstufen)3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는 생물학적 용어를 ‘변이’ 에서 ‘분화’로 바꾸었다. 이상의 연구활동으로 확인할 때 에빙 박사의 연구 업적은 최초 동성애에 대한 의과학적 판단의 근거를 제시한 부분에 대해 상당한 평가를 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동성애에 대한 에빙 박사의 결론들은 현재는 많은 부분들이 잊혔는데 어떤 부분은 오스트리아의 신경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MD, 1856-1939) 박사의 이론이 동성애를 심리학적인 문제로 간주하는 일반의사들에게 더 흥미로워서이며, 또 어떤 부분은 에빙 박사가 히스테리와 자학적 변태 행위를 심리학적으로 순교(신성에 대한 욕망)와 연계를 시키면서 오스트리아 천주교회의 적개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심리학자이며 성과학자인 존 머니 (John William Money)박사는 뉴질랜드 출신으로 특히 성적 정체성과 성별 생물학의 전문가로서 “성적 유동성의 심리학” 과 “성별에 대한 사회 관습적인 구분이 개인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첫번째 과학자 중 한사람이었다.

머니 박사는 처음엔 심리학을 전공하였으나 졸업은 심리학과 교육학의 복수 전공으로 1944년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1952년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머니 박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으나 1950년도에 결혼을 하고 자녀는 없었다. 머니 박사는 ‘성적 정체성’, ‘성별 역할’, ‘성적 정체성과 역할’, 그리고 ‘사랑의 지도 (lovemap)’에 관한 몇몇 이론들과 그 연관된 전문용어들을 제안하고 개발하였다. 또한 머니 박사는 미국 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하는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자료’의 1980년 세번째 개정판에서 ‘성도착증’ 용어를 ‘변태성욕’으로 고쳐 사용하는데 크게 기여를 하였으며, ‘성적 취향’을 대체하여 ‘성적 지향’의 개념을 소개하였다. 머니 박사는 1951년부터 2006년 생을 마감하기까지 존스홉킨스 대학의 (Johns Hopkins University)소아과와 의학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65년에 클로드 미온(Claude Jean Migeon)박사와 함께 ‘존스홉킨스 성 정체성 진료 센터’를 설립하였다. 또한 머니 박사는 존스 홉킨스 대학의 성전환 수술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성적 행동 연구소’의 활동에도 관여하였다. 이를 통하여 존스 홉킨스 대학병원에서는 1966년에 남성으로 태어난 캐나다 사람 데이비드라이머(David Peter Reimer)를 대상으로 성전환 수술을 실시한다. 이 공로로 머니 박사는 2002년 독일의 사회 – 과학 성 연구회로부터 매그너스허슈펠트 메달(MagnusHirschfeld Medal)을 수여 받는다.

머니 박사의 책은 1969년 출간되어 성전환수술을 더 많이 실시하는데 기여하였으며 또한 성전환자들 개개인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서적, “성전환증과성전환”의 공동저자이며 그의 연구 “자웅동체” 결과를 토대로 성별(gender)과 관련된 많은 정의들을 1950년대 저널의 논문들을 통하여 소개하고 있다.

머니 박사의 성별(gender)에 대한 정의는 인간들 사이의 성(sex)의 차이에 대한 그의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다. 머니 박사에 의하면 하나의 성(sex)이 난자(ova)를 생산하고 또 다른 하나의 성(sex)이 정자(sperm)을 생산하는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성(sex)의 차이다. 하지만 이 근본적인 이분법을 깨는 성(sex)에서 유래된 다름이 있다. 이러한 다름은 인체 밖으로 소변을 배출하기 위한 성기가 다를 뿐만 아니라 성적(sex) 이형성에 의한 차이는 2차 성징, 크기, 색상, 무늬를 포함할 수 있으며, 행동적인 차이까지도 포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머니 박사의 이론에 따르면 성별과 관련된 보조적인 차이의 대표적인 예는 여성의 비교적 작은 체형과 유아를 수유하는 동안 활동의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며, 이와는 대조적으로 남성은 사냥 등의 활동적인 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또한 성별과 관련된 임의적 차이는 아주 전통적인 방법이며 예로써 색상의 선택에 있어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파란색으로,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분홍색으로 표시하는 것 등이다. 이러한 임의적인 차이의 전통적인 관습은 삶의 활동 영역에서, 가령 남자와 여자의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 차이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머니 박사는 얘기한다.

마지막으로 머니 박사는보다 전통적인 학술적 용어인 성 역할 (sex role)로부터 변화되어 지금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성별 역할 (gender role)로 학술적 용어를 제창하였다. 이러한 개념은 자웅동체에 대한 그의 연구로부터 확대된 것이다. 머니 박사의 정의에 의하면 예전의 관습적으로 남성 혹은 여성에게 적용되었던 생식기적 접촉에 의한 에로틱한 성적 역할뿐 아니라 비생식기적접촉과 에로틱하지 않은 성애(性愛)까지도 광범위한 성별 역할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얘기하였다.

하지만 머니 박사의 이러한 모든 활동에 대해서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의 전문적인 활동기간 동안은 성적 행동에 대한 전문가로서, 특히 ‘성별은습득되는 것이지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라는 관점에 대해 많은 존경을 받았지만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사례인 데이비드 라이머의 성전환수술이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많은 비평을 받기 시작했다.

위에서 짧게 언급한 바와 같이 라이머는1966년 남자아이로 태어나 생후 8개월이 되었을 때 미숙한 포경수술로 인하여 성기를 잃게 된다. 이때 머니 박사는 아이의 부모에게 성전환수술이 라이머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설득한다. 생후 22개월에 라이머는 고환 절제술을 받는다. 그 후 그는 이름을 브렌다로 바꾸고 여자아이로 양육된다. 이어서 머니 박사는 호르몬 처방을 권유하였으며 부모는 이에 동의를 하였다. 더 나아가 머니 박사는 외과적 수술을 통하여 브렌다에게 인공 자궁을 만들자고 부모에게 권유하였으나 부모는 이 제안은 거절하였다. 머니 박사는 이 성전환 수술이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여러 번에 걸쳐 학술지에 게재하였다.

그후 몇 년 동안 머니 박사는 라이머, 즉 브렌다의 점진적 회복에 대해서 “존/조안 사례”라고 보고하며 비교적 성공적인 여성성의 개발이라고 평가하였으며 이 사례를 성전환과 외과적 재건 수술의 성공 가능성, 심지어 유니섹스적이지 않은 경우에 대해서도, 지지하는데 사용하였다. 하지만 머니 박사 연구실의 예전 학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보고가 있었다. 매년 방문 검진을 할 때에 라이머즉 브렌다부모는 수술의 성공적인 진행에 대해 스텝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라이머의 쌍둥이 형제인 브라이언은 이후 조현병으로 판명되었다.

라이머의 사례는 그가 하와이 대학교 해부학 및 생식생물학과 교수인 밀톤 다이아몬드 (Milton Diamond)박사에 의해 1997년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학문적인 성과학자로서 라이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유아들에게 의사들이 라이머에게 행한 것과같은 잘못된 시술을하지 않도록 이해시키기 위해 라이머의 사례를 공개할 것에 대한 허락을 요청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이머는 자신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공개하였으며 캐나다의 평론가이며 소설가인 존 콜라핀토(John Colapinto)는 대중에게 영향력 있는 미국의 월간지 “Rolling Stone”의 1997년 12월호를 통하여 전세계에 이 사실을 알렸다.

2002년 7월 1일, 라이머의 형제인 브라이언은 항우울증 약물과다 복용으로 사망하였으며, 라이머는 수년간의 우울증과 재정적 불안정, 그리고 결혼의 문제들로 고통을 겪다가 2004년 5월 4일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라이머의 부모는 두 아들이 사망한원인이 머니 박사의 처치 방법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머니 박사는 사건 노출에 대한 언론의 반응은 우익 언론의 편견과 “여권 신장을 반대하는 운동권” 때문이라고 항변하였다.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은“남성 성과 여성 성이 유전자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침대와 주방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니섹스 활동가들 또한 실패에 대한 보고를 하지 않았으므로 인해 수천 명의 유아에 대한 잘못된 외과적 성전환 시술이 정책의 문제로 이어지게 된 것에 대해 머니 박사를 비난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머니 박사의 동료들에 따르면 그는 이 사례로 인하여 절망하였으며 어떠한 기준에 대해서도 논의하지 않았으며 머니 박사 자신의 견해 또한 수년 동안 변화하였다.

이상으로 1950년 이전의 대표적인 의과학자 두 사람, 크라프트에빙 박사와 존 머니 박사의 연구 활동을 살펴보았으며 두 사람 모두 말년에 그들의 연구 업적에 대한 비평을 피할 수 없었음을 보게 된다. 다음의 연재에서는 1950년대에 대표적인 성 연구자인 알프레드 킨제이박사의 첫번째 연구보고서인 “인간 남성의 성적행동 (Sexual Behavior in the Human Male)”을 중심으로 동성애와 과학에 대한 사실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문헌

1. Richard von Krafft-Ebing. Psychopathia Sexualis: eine Klinisch-Forensische Studie (Sexual Psychopathy: A Clinical-Forensic Study), 1st Edition, 1886.

2. Jens De Vleminck (2017). “Sadism and Masochism on the Procrustean Bed of Hysteria: From Psychopathia Sexualis to Three Essays on the Theory of Sexuality”. Psychoanalysis and History. 19 (3): 381. doi:10.3366/pah.2017.0232 – via Edinburgh University Press.

3. The Jahrbuch für sexuelle Zwischenstufen (Yearbook for Intermediate Sexual Types) was an annual publication of the Scientific-Humanitarian Committee (Wissenschaftlich-humanitäres Komitee, WhK), an early LGBT rights organization founded by Magnus Hirschfeld in 1897. The periodical featured articles on scientific, literary, and political topics related to sexual and gender minorities. It was published regularly from 1899 to 1923 (sometimes quarterly) and more sporadically until 19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