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에 짧게 대답하자면 “아니오”입니다. 이 주제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이해하는데는 적어도 세 개의 열쇠가 존재합니다. 바로 문맥(context), 문맥, 문맥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노예(slave)”라는 단어는 “하인(servant)” 혹은 “종(bondservant)”으로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성경에는 두 가지 종류의 노예가 존재합니다: 임금을 받는 하인 혹은 종, 그리고 임금을 받지 못하는 잔인한 노예입니다.

성경은 잔인한 노예제도를 명백히 비난합니다. 서구 사회에 수백 년간 만연했던 “인종에 기반한” 잔인한 노예제도는 완전히 반성경적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비난받을행위입니다!

아래 말씀에 의거하면 노예 상인들은 가장 악한 죄인들 중 하나입니다.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딤전 1:10)

구약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사람을 납치한 자가 그 사람을 팔았든지 자기 수하에 두었든지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 21:16)

사람들이 노예라는 단어를 들을 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며, 성경이 노예제도를 옹호하는 것처럼 오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문맥을 통하여 문장을 올바르게해석하는 것은 해석학의 중요한 자세입니다. 생각들을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문장으로 무턱대고 욱여넣을 때 잘못된 해석을 하게 됩니다. 노예제도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성경에서 묘사된 “노예제도”의 규범형태는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잔인한 노예제도”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성경의 노예제도는 기본적으로 빚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서 되값을 방법이 없는사람들을 위한 파산법의 한 형태입니다. 그것은 빚을 청산할 목적을 위한 경제적 합의입니다. 빚을 진 사람은 돈을 빌려주었던 사람, 혹은 부유한 다른 사람에게 가서 스스로 하인이 되겠다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사람이 제안 받아들이면, 하인의 빚은 청산되며, 특정한 기술 훈련을 받고, 살 곳을 제공받으며 임금을 받게됩니다. 또한 6년이 지나면 하인의 계약은 만료되며, 그의 빚은 청산되고 다시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 저의 한 친구는 이 제도가 오늘날의 대학교 제도보다 더 낫다고 농담 삼아 말했습니다!

이러한 행위와 관련자들에 대한 많은 성경적 규제들이 존재했습니다. 이 규례들이 문맥에 맞게 제대로 이해된다면,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아울러 이와 같은 규례는 기존에 주변국들을 통해 시행되어왔던 잔인하고, 비인륜적인 소위 “하인”이라는 형태로 변질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아래 성경 말씀은 이와 같은 의도를 잘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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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25장 38절~46절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며 또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와 함께 있는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품꾼이나 동거인과 같이 함께 있게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그 때에는 그와 그의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의가족과 그의 조상의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라. 그들은 내가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네 종은 남녀를 막론하고 네사방 이방인 중에서 취할지니 남녀 종은 이런 자 중에서 사올 것이며, 또 너희 중에 거류하는 동거인들의 자녀 중에서도 너희가 사올 수 있고 또 그들이 너희와 함께 있어서 너희 땅에서 가정을 이룬 자들 중에서도 그리 할 수있은 즉 그들이 너희의 소유가 될지니라. 너희는 그들을 너희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어 소유가 되게 할 것이라 이방인 중에서는 너희가 영원한 종을 삼으려니와 너희 동족 이스라엘 자손은 너희가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

에베소서 6장 5~9절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하듯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하듯 하지 말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줄 너희가 앎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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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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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규제들이 보여주듯이 성경은 잔인한 노예제도의 혐오스러운 행위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와 에이브러햄 링컨과 같은 크리스천들이 서구에서 행해지던 잔인하고, 인종에 기반한 노예제도의 잔학행위를 폐지하는데 앞장섰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선 크리스천들은 모든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을 이해했으며, 당대에 인기 있는 이데올로기와 타협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은 기독교적 사상과 행위가 거의 모든나라에서 노예제도를 폐기하도록 했다는것을 인정합니다. 오늘날 아직도 노예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은 전형적인 다신교나 무슬림 국가들입니다.

진화론과 무신론, 상대적 도덕, 인간의 가치가 지렁이와 다를 바 없다고 믿는 세속적 세계관을 믿는다면 무자비한 노예제도를 옹호하거나 심지어는 이를 기념하지 않을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특별히 그러한 행위가 당신의 생존에 유리하다면 말이죠.

결국 세속 주의자들의 이러한 “꼬투리를 잡는 식의 공격”은 실패할 뿐 아니라 자신들의 세계관의 잘못됨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기독교만이 인류의 평등, 그리고 포악한 노예제도를 거부해야만 하는 명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