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의로움”으로 죄를 가리려는 행위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한다(사64:6). 우리의 마음은 거짓되고 부패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행위로도 죄를 벗을 수 없다(렘17:9). 무화과나무 잎이 아담과 하와의 죄를 가릴 수 없었던 것처럼 죄로 불완전한 우리는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거룩하신 하나님과 다시 화목해질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므로(창 1:27), 우리의 몸은 죄로 인해 죽어도 우리의 영혼은 영원히 살기 때문이다. 죄인의 신분으로는 거룩하고 의로운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고, 우리의 인간적인 행위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 이대로 라면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되어 악하고 죄 많은 상태인 지옥에서 고통 가운데 살게 될 것이다. 얼마나 끔찍한 결말인가?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

“마지막 아담”의 약속

창세기 3장15절에서 성경 전체의 메시지를 요약하며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 후손들(우리!)에게 죄로부터 구원받을 길이 있음을 말씀하셨다. 이를 통해 베들레헴의 아기가 왜 중요하며, 진정한 “성탄절” 의미가 무엇인지 추측할 수 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여기에서 “여자의 후손”에 대해 더 알아보자. 창세기 22장18절에서는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약속된 “후손” 또는 “씨”가 누구인지에 대한 추가 단서를 제공한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 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 22:18).

갈라디아서 3장16절에서 사도바울은 “약속된 후손”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갈 3:16). 사도바울은 창세기 22장 18절에서 단수로 사용된 “후손”이라는 단어를 토대로 그의 편지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단수 및 복수 단어의 사용에 이르기까지 깊이가 있는 성경의 무오성을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친히 성령으로 잉태하게 하실 분, 곧 베들레헴에서 여자(실제로는 “처녀”)로부터 태어난 아기, 즉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에 관한 예언인 것이다.

창세기 3장 15절에 나오는 “머리”와 “발꿈치”

창조주 하나님(골 1:16)께서 육신이 되어(요 1:14) 완전한 사람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시고(고후 5:21) 죄에 대한 형벌을 받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후(발꿈치를 상하게 한다는 의미)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사실은 타락한 피조물인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큰 신비이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라는 말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을 이기심으로써 사탄이 받은 치명적인 상처를 의미한다. 한마디로 사탄은 패배한 것이다. 현재 사탄의 작전은 마치, 1945년 8월에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항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일본 병사들이 계속 싸웠던 것과 같다. 마귀는 물론 여전히 공격하여 피해를 줄 수 있겠지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음부의 권세인 사망을 정복하려고 오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허물을 덮어 주시다

타락 이후,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어떤 특정한 행위가 있어야 함을 보여주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 3:21).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덮어준다는 의미로 가죽옷을 만들어 주셨는데 적어도 한 마리의 동물을 죽임으로 첫 번째 피의 제사를 행하셨다. 이것이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상징한다(요 1:29). 인간의 추악한 죄는 오직 하나님께서 베푸신 예수님의 구원으로만 덮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이 “의롭게” 설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의로움(righteousness) 밖에 없다(고전 1:30).

우리의 허물을 덮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죄인에게 의로움을 입혀 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어떻게 그 의로움을 얻을 수 있을까? 성경은 이 질문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9).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을 입으로 시인할 때 우리는 창조주로부터 거저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받아 그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된다!

두 아담

첫 번째 아담을 통하여 인류가 시작되었고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의 구원의 길이 열렸다. 그러므로 그분을 영접하는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2).

첫 아담은 죄를 짓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결국 죽어 그의 몸은 먼지로 변했다. 그리고 그의 죄 때문에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지만 자신의 죄가 아니라(죄 없는 완전한 삶을 사셨음) 인류의 죄 때문이었다. 그분은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사 53:5; 벧전 3:18; 히 2:9). 그러나 죽은 채로 있지 않고 몸이 “썩음을 당하지 않았다”(행 2:27, 13:35-37).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마귀의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히 2:14)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전 15:22-23). 이것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의 메시지이다. 처음이 좋았던 창조 때부터 시작하여 아담 안에 있는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구주가 필요했기에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육신이 되시기 위해 역사에 발을 내디디셨다.

성탄절에 우리가 해야 할 일

안타깝게도 전 세계적으로 우리의 차세대 아이들이 학교, 대학, 언론 매체에서 인류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적 교육을 받으며 창세기의 첫 아담과 죄가 세상에 들어온 역사를 믿지 못하도록 세뇌당하고 있다. 이 결과, 이들은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거부하고 있다. 사회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침묵시키려는 조짐은 바로, 인간이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의 결과라고 말하는 거짓된 사상들이 창세기의 역사를 공격하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탄절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주기 때문에 축하하고 기념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두 아담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삶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이 메시지를 이해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창세기의 역사가 사실임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창세기부터 베들레헴까지 연결하여 설명해 주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성탄절에 베들레헴의 아기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을 이해하거나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번역/서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