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신앙과 과학의 분리: 문화전쟁(1)

Categories: 이동용

Monday, 22 January 2007

400여년 전 영국의 철학자이며 법률가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은 과학적 방법론의 아버지이다. 뉴턴같이 그 또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저서들은 서구 사회에 큰 유익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심각한 악영향을 후대에 남겼다. 당시 그의 촛점은 자연철학인 과학이 발전할 수 있도록 모든 장애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는 과학 발전에 저해되는 모든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였다.

베이컨이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상에는 성경의 창세기(1장)와 욥기서가 포함되어 있다. 그가 후세에 끼친 악영향은 바로 성경과 과학이 세상 과학자들에게 일치하는 신념이 있다. 이는 시간만 충분하면 언젠가 과학이 우주의 모든 비밀을 설명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결국 인류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그들은 과학은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진리로 믿는다. 동시에 계속적인 연구와 실험을 통해서 우주를 지배하는 모든 법칙들을 알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결과 언젠가는 신의 존재가 드러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취하지만 그러나 현재는 초이성적인 기적들을 무시하는 쪽을 택한다. 왜냐면 과학으로 그 사실들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으로 만족할 만큼 증명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자세야 말로 베이컨적인 사고이다. 이러한 믿음의 조상이된 베이컨은 과학에 대한 찬사로 “지식의 계명은 의지를 통제하는 계명보다 한층 더 숭고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 지성의 최고 부분인 이성을 통제하는 계명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는 성경은 오직 신앙과 관련된 일에 만 진리일 뿐 세상 사물에 관해서는 전혀 권위를 주장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베이컨은 기독교에 기초를 두고 수립한 과학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주가 어떻게 운행되는 지 각종 실험들을 옹호하고 아리스토텔레스(384 – 322 BC)와 같은 철학자에 의존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의 저서들에는 의아스러울 만큼 많은 모순이있다. 그럼에도 케플러(1571–1630)와 뉴톤(1642–1727)과 같은 과학자들처럼 지구의 짧은 나이와 문자적 6일 창조를 믿는 입장을 밝히고있다. 그러나 그는 장차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비극적인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헬라 철학에 기초한 과학을 반대한 그는 동시에 성경을 지식(과학)의 근거로 삼는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그 또한 하나님의 두계시, 곧 성경과 피조계를 믿었다. 그는 영적세계에 대하여 성경을 믿는 동시에 물질세계에 대해서는 과학을 의존하는 이원 신앙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입장이 세상의 기원과 종말, 그리고 인류의 역사에 하나님이 어떻게 개입하시는 지 모든 해답이 성경에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게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이다.

실험을 통한 과학으로는 알 수 없는 과거의 사건들에 대해서 성경은 그 자체가 역사적 사실임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6천여년 전의 창조와 타락, 그에 따른 저주, 그리고 지구 전체를 덮은 대홍수, 이같은 사실을 무시하면서 어떻게 다른 형태의 과거 모형을 구축할 수 있는가?. 베이컨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간 사람들은 지구의 장구한 나이(6,000년 보다 훨씬 오랜 나이)를 믿는 학자들로서 그들은 대홍수 기록과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성경적 연대기를 거부했다. 그 다음 다아윈은 베이컨의 방법론을 전격적으로 생물학에 적용함으로써 성경의 권위를 더욱 훼손시켰다. 그의 논리에 의하면 만약 작은 변화들이 장구한 세월동안 축적되어 현재의 지질 형태를 만들어 냈다면 역시 같은 이치로 생물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이 축적되어 새로운 생물 형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 각 분야의 창시자들 대다수가 성경을 믿는 과학자들이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시작부터 성경의 계시를 멸시하고 제쳐 놓으려는 흐름이 있었다. 고린도 후서 10장 5절을 보면 우리는 사도 바울이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항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 (모든 논쟁과 추론)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일을 수행했음을 알게된다. 엘리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섬길 것인지 혹은 바알을 섬길 것인지 결단하도록 도전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고백하는 남녀들에게 다음과 같이 도전해야 할 것이다. 만약 과학이 당신으로 하여금 창세기는 진리가 될 수 없다고 확신하게 만든다면 요한복음 5장 47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즉 너희가 모세의 글(창세기를 포함하는 모세오경)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그 자체에 권위가 있다. 성경은 사람들이 혹은 사탄들이 고안해 낸 온갖 시험을 다 통과한 책이다. 때문이다. 현대 사상가들도 인정하듯 진실은 결코 스스로 진실임을 설명하지 못하는 법이다. 우리가 한가지 사실을 해석하려 할 때 성경적 전제로 시작한다면 증거는 강력하게 성경과 일치되어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베이컨의 인간 중심의 가정으로 시작한다면 불가피 인위적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과학자 사고체계의 인본주의 철학의 기초는 이미 오래전 부터 존재해 왔다. 라이엘과 다아윈 등 진화론자들이 계속 주장, 진화론이 모든 실재의 설명이라는 보편적인 믿음을 갖게된 것은 그와 병행된 사회의 도덕적 타락과 함께 필연적인 결과였다. 과학에 대한 베이컨의 관념에 미혹되어서 교회는 믿음을 수호하는데 불가결한 대전제적 요소들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그 결과 성경적 전제들은 베이컨의 인본주의적 전제들로 대체되어 버렸다. 따라서 이제 성경이 공격을 당하고 또 방어해야 하는 상황이 되버린 것이다. 그 가운데 교회는 기원의 문제는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고 하거나 성경은 신앙에만 관계할 뿐 과학과 역사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함으로써 베이컨적인 사고의 덫에 더 깊이 걸려들고 말았다.

AiG(Answers in Genesis)는 종종 사역의 핵심이 젊은 지구(6,000여년)나 창조의 문자적 날수에 촛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성경의 권위에 있음을 지적해 왔다. 문자적 6일 창조와 지구의 젊은 나이는 성경의 권위에 근거하여 따라오는 귀결이지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성경의 영적세계와 물질세계 사이에 쐐기를 박음으로 베이컨은 창조에 대한 자신의 명백한 신앙고백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그것을 거부 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결론적으로 진화론적 인본주의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은 기독교인들의 사고속에 성경말씀의 권위를 회복 하는 것이다. (AIG Creation Vol 25 (1): 46-48, December 2002, Part 1: Culture Wars by Carl Wieland & Jonathan Sarfati)

Author: 이동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