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나치 그리고 히틀러

Categories: 이재만 회장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시키려는 시도인 사회진화론을 다루는데 있어서 이번 호에는 한 사람과 그를 따랐던 자들에 대하여 다루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을 주도한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988-1945)와 나치 당이다. 이 내용은 앞선 우생학 칼럼(이충현)과 밀접하게 연결되기에 같은 호에 다룬다.

홀로코스트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히틀러와 나치에 대하여 다룰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홀로코스트(Holocaust)이다. 홀로코스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정부인 나치에 의해 계획적으로 민간인을 학살한 사건이다. 전쟁 동안에 소위 “열등한 인종”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약 5,500만명 사망했다. 이 중 1,100만명은 홀로코스트로 죽었고, 그 중 600만명은 유대인, 500만명 이상은 슬라브족(주로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사람들) 크리스천이다. 유대인 사망자는 당시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의 2/3에 해당되며, 이들 중 110만명이 어린이다.

1935년 나치는 독일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에 대한 차별적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 법률에는 유대인에 대한 독일 시민권의 박탈과 독일인과의 결혼 금지 내용이 들어있었다. 이는 우생학적 정책에 의거하여 열등한 유대인의 유전자가 우수한 아리안(Aryan, 인도-유럽계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총칭, 독일인도 포함) 유전자를 오염시킨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홀로코스트는 이와 같이 우생학적 사고의 극단적인 연장선의 결과이다. 독일인은 히틀러와 힘러(Heinrich Himmler, 1900-45)의 생각에 매료되어 인종 순결(racial purity)이라고 하는 그릇된 꿈을 완수하기 위해 홀로코스트라는 참혹한 수단을 동원했다. 나치는 우수한 인종인 자신들을 높이는 것은 전쟁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고 믿었으며, 히틀러와 다른 리더들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들은 ‘존재를 위한 투쟁’이 삶의 법칙이라는 진화론적 역사관과 우생학적 사고로 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치(Nazi)
나치는 독일국민에게 “투쟁”(Kampf)이 국가사회주의 이상의 중심 개념이라고 압력을 가했다. 나치는 찰스 다윈의 살기 위한 투쟁(struggle for existence)과 니체의 권력 의지의 표현으로서의 투쟁(struggle as the manifestation of “will to power”)에 권위를 두었다. 즉, 사회진화론의 신뢰를 통해 인종차별을 투쟁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다윈의 “인간의 유래(Descent of Man, 1871)”는 나치의 “유래의 이론(Theory of Descent)”의 아이디어에 영향을 주었다. 이 둘은 모두 자연선택 과정으로 현재의 다양한 종들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나치는 자연선택을 견고한 자연법칙으로 보았으며, 자신들이 인류역사의 진화 과정 가운데 책임을 지고 있다고 여겼다. 즉, 인종을 정제 과정으로 ‘가장 잘 적응된 자들 만이 살아남아 재생산하며, 그렇지 못한 자들은 추려져 사라진다’는 식으로 사고한 것이다. 이런 진화론적 세계관 안에서 국가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 나치당의 기본 사상 및 정치운동이며, 약칭이 바로 나치즘이다)는 사회, 사람, 인종을 모델로 삼았다.

Adolf Hitler
히틀러의 인종에 대한 사고는 전적으로 진화론에 의지했는데 특별히 렌즈(Fritz Lenz, 독일, 유전학자, 우생학 교수, 1887-1976)나 헥켈(Ernst Haeckel, 독일, 생물학자, 독일 진화론의 아버지, 진화론적으로 조작된 발생반복설 논문으로 유명함, 1834-1919)과 같은 다윈의 추종자들의 영향을 받았다. ‘우수한 인종’에 대한 그의 믿음은 각 인종이 진화론적으로 다르다는 적자생존의 전제에 기초한 것이다. 히틀러가 ‘종의 기원’ 원본을 읽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위의 추종자들의 글은 읽었음은 분명하다. 이는 렌즈의 책을 출판한 리만(Julius F. Lehmann, 독일, 1864-35)이 히틀러의 가까운 친구였다는 것을 보아도 충분히 추정 가능하다. 리만은 사회진화론, 우생학, 반유대주의를 부추기는 많은 책들을 출판했다. 히틀러에게 영향을 준 또 다른 한 사람은 진화론자 루데크(Kurt Lüdecke, 1890-1960)이다. 그는 우생학이란 용어를 탄생시킨 갈튼(Francis Galton, 영국, 1822-1911)의 책을 열심히 읽고 감명받은 사람이다. 이와 같이 독일의 진화론은 헥켈에 의해 시작되어 19-20세기 독일의 지적 역사에 가장 강력한 힘 중에 하나가 되어, 결국 히틀러의 나치즘으로 이어졌다. 나치가 정권을 잡은 후 진화론은 독일 전역에 더 빠르게 전파되었고 어떤 다른 나라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실제로 독일인들이 진화론을 생각할 때면 헥켈의 진화론적 해석을 떠올리곤 할 정도였다.

히틀러는 그의 글과 연설에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드러냈는데, 강한자는 반드시 약한자를 다스리는 것이 자연법칙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이 철학
을 인류 역사에 적용시켜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항상 정복해왔으며,이는 진화 법칙이 요구하는 바이며, 과학적 사실이라 여겼다. 이런 진화론적 철학은 인종차별과 우생학으로 진행되었으며, 홀로코스트에서 극도에 다다랐다.
역사학 교수인 외이칼트(Richard Weikart, 1958- )가 “히틀러의 진화론적 윤리는 아무리 가증스러운 방법이라도 ‘최고’ 인간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을 정당한 방법이라고 말한다”는 말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실제로 히틀러는 자신의 책인 ‘나의 투쟁(Mein Kampf, 히틀러의 자서전적인 책, 1925, p.132)’에서 우수한 자의 출생 횟수가 줄어들고 이런 상황이 오래 지속되면 미래는 슬픈 상황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서술했다. 그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수한 인종을 생산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을 단순히 적용하는 계획에 불과하다고 믿었다. 그는 “국가가 해야 하는 것은 우생학 또는 응용 생물학(진화론) 하에서 행해지는 인위적 선택”이라고 믿었다. 그는 진화론적 믿음의 변호를 위해서 “선사시대의 조상인 원숭이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라고 하며 자신의 채식주의가 자신을 젊게 만들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히틀러는 “독일인의 초인간적 생물 진화”를 예견하기도 했으며, 더 나아가 과학자들에 의해 “우수한 인종”이 창출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그에게 개인은 인종에 비해 훨씬 덜 중요했으며, 어떤 열등한 인종은 인간 이하의 동물일 뿐이었다. 히틀러는 아프리카인들을 진화론적으로 아주 열등한 인종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이들을 더 낫게 바꾸려는 선교사들을 아주 경멸했다. 그가 행했던 일들을 볼 때 그는 크리스천도 아니고, 기독교의 기본 교리를 반대했다. 그와 나치 리더들은 동양인들 역시 열등한 인종으로 여겼으나 전쟁이 승리로 마칠 때까지 동맹자로서 놔두기로 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 동양인의 문제를 다루기로 결정했다.
유대인 저자 컴포트(Ray Comfort, 1949- )는 찰스 다윈에 의한 진화론 철학이 확장되어 히틀러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되었으며, 아리아 인종의 우월에 대한 이런 믿음은 제 3 제국에게 우생학, 안락사, 강제 살균 및 인종 차별을 실행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고 결론 내렸다. 실제로 히틀러는 자신이 믿고 있는 진화론적 생물학을 사회에 적극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독일 교회와 과학자들
독일이 종교개혁을 이끌고 개혁주의에서 세계적 리더였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이 진화론을 옹호함에 따라 교회들은 성경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진화
론적 세계관으로 빠르게 전환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독일 사회는 세속화된 세계관을 빠르게 받아들였고, 도덕적 기준과 삶의 가치에 있어서 과학과 물질주의에 의지했다. 루터교회 목사이며 신학자인 반 나치운동가인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독일, 1906-45)는 ‘교회는 그들의 머리를 잃어버렸고 창세기를 비롯해서 성경 전체를 버렸다’고 했다.
독일 과학자들은 나치가 열등하다고 여기는 그룹에 대한 만행에 과학적 지지를 보냈다. 나치 의약품과 과학은 홀로코스트를 수행하도록 하였고 나치는
이를 가지고 괴물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 즉, 독일 과학자들은 나치의 국가사회 주의자들의 인종적 정책의 당위성과 수단을 제공한 셈이다.

나치의 생물학 교과서 속의 진화론
독일에 나치의 생각과 진화론적 사고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교과서는 아주 중요했다. 이는 히틀러의 직접적인 진술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나에게 교과서
를 제어하도록 해준다면 나는 국가를 제어할 수 있다”. 나치는 진화론이 그들 사상의 중요한 바탕이기에 교과서와 교실을 진화론 가르치는 도구로 이용했다. 또한 모든 선생과 교수가 진화론자가 되어 “히틀러의 인종적인 교리”에 헌신할 뿐 아니라 이런 목표를 순응하도록 모든 교과서를 재편성하도록 종용했다.

나치와 진화론 사이에 밀접한 관계는 많은 생물 교과서에 자세히 설명되어졌다. 예를 들어 당시 5학년 교과서를 보면, “동식물의 모든 생물들은 생존을
위한 지속적인 투쟁을 하고 있다”고 기록했다. 또한, “충분한 영토를 확보하지 못하고… 필요한 힘, 속도, 주의력, 영리함이 없는 동물은 적에게 먹이감이 될것이다… 존재를 위한 투쟁은 어려워도 생명을 유지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이 투쟁을 통해 생명에 부적합한 것은 모두 제거되며, 생존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선별된다. 자연법칙은 생존 투쟁 위에 세워졌다.” 이와 같이 나치 하에 생물교과서는 진화론과 우생학을 실었으며, 진화론적 인종차별을 공공연히 가르쳤다. 결국 이 그릇된 사고가 보편적이 되자 홀로코스트까지 이르렀다. 히틀러가 언급한 것처럼 나치는 교과서를 통해 진화론으로 교리화하려고 했으며, 결국 독일 전 국가가 나치의 목표에 동조했다.

나치 리더와 히틀러의 측근들
아래는 나치의 리더이며 히틀러의 측근들의 배경이다. 히틀러는 아래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진화론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주위에 두었고, 그러므로 이 굴레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

멩겔레(Dr. Josef Mengele, 1911-79): 다윈의 죽음의 천사. 나치 친위대(SS) 장교이자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나치 강제 수용소의 내과의사. 수용소로 실려온 수감자들 중 죽일 사람과 강제 노역으로 넘길 지를 결정하였으며, 수용소 내에서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하였다. 전쟁 당시에 젊었던 그는 나치의 정치 분위기와 진화론적 유전학에 강한 흥미를 갖고 있었으며, 장애인들은 아기를 낳기에 부적합하다고 여겼다. 결국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비극 중에 하나를 이끌었다.

보어만(Martin Bormann, 1900-45): 히틀러의 오른팔. 히틀러의 보좌관들중 수석인 당수부장을 역임하여 당 내부 업무를 총괄. 기독교 혐오자며 다윈과 히틀러의 사고를 받아들이며 인종차별자 로 빠르게 변했다. 교회를 파괴시키고, 나치가 열등하다고 여기는 수많은 인종, 유대인, 슬라브인 등을 제거했다. 독일에서 가장 권력 있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되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12년간 수많은 테러에도 가담했다.

힘러(Heinrich Himmler, 1900-45): 진화론자며 대량학살자. SS로 약칭되는 친위대 국가지도자로서 SS와 게슈타포를 지휘. 유대인 대학살의 실무를 주도한 최고 책임자. 나치 강제수용소와 학살대인 특수작전집단 창설자. 최종 지휘 책임자로서, 600-1,200만에 이르는 사람들을 산업적 규모로 학살. 인종에 대한 우생학적 세계관이 그의 중심 사상이었으며, 유대인 뿐 아니라 슬라브인등과 같은 “열등한 인종”들은 제거되거나 우수한 인종의 노예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믿었다.

괴벨스(Joseph Goebbel, 1897-1945): 홀로코스트의 아버지. 나치 독일에서 국가 대중 계몽선전장관의 자리에서 나치 선전 및 미화 책임자. 히틀러의 최측근. 선전 방법과 유창한 말솜씨로 사람들을 광신적인 사람들로 만들었다. 나치당의 뇌(brain)라고 할 만큼 가장 교육받은 사람으로서, 진화론적 믿음을 갖고 인종차별에 초점을 두며 우생학과 학살을 선동했다. 히틀러가 죽은 다음날 아내와 6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동반 자살했다.

괴링(Hermann Goring, 1893-1946): 히틀러와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자. 나치의 초기 당원. 초기 나치 돌격대의 지휘관. 게슈타포 창설자. 나치 공군 창설자. 나치의 두 번째 권력가로서 교회를 박해한 리더 중에 한 명이며, 진화론과 히틀러에 모두에게 영향을 받아 타락한 사람이다.

하이드리히(Reinhard Heydrich, 1904-42): 열렬한 반 기독교인이며 홀로코스트 기안자. 게슈타포 및 SS 보안방첩부의 수장. ‘프라하의 도살자’ 또는 ‘피에젖은 사형집행인’ 등의 별명. 그는 우생학과 진화론적 문화에 깊이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유럽에 사는 모든 유대인과 열등한 인종을 살해하는 나치의 계획의 선봉장이었다.

로젠베르크(Alfred Rosenberg, 1893-1946): 진화론의 “새(new) 복음의 학자”. 인종차별 주의자들의 저서를 연구하며 반유대주의와 반공주의를 공개적으로 천명. 1920년대 후반부터는 반유대주의 사상의 체계화와 보급을 위해 유’ 대인문제 연구소’ 를 설립. 진화론적 인종 이론으로 이루어진 그의 책 ‘20세기의 신화(The Myth of the Twentieth Century, 1930)’는 베스트셀러가 되어 열등한 인종을 살해하는 나치의 목표를 많은 사람에게 설득시켰으며, 유대인 뿐 아니라 폴란드와 다른 나라의 기독교인 홀로코스트에 영향을 주었다.

슈트라이허(Julius Streicher, 1885-1946): 진화론자며 반 카톨릭 사고를 가진 히틀러의 멘토. 히틀러의 연설을 듣고 감화되어(1921년) 나치당에 입당. 1923년 자신이 편집장을 맡아 반유대주의 보급을 위한 대중지를 창간. 1933년 나치당 집권 후 유대인 사업가나 상인이 운영하는 회사와 상점 등에 대한 불매 운동을 지시했고, 유대 회당을 강제로 철거할 것을 명령하기도 했다. 진화론적 신뢰 하에 인종차별을 선전하는 주동자로써 두 인종이 결혼하면 인종 퇴화가 일어난다고 믿었다.

레벤스보른(Lebensborn, 1935-45): 진화론적 믿음으로 더 나은 나치를 사육하는 장소. 독일어로 ‘생명의 탄생, 생명의 샘, 생명의 원천’이라는 의미로 인종적으로 우수한 애들을 생산하기위해 설립된 인간 교배 실험장. 힘러가 1936년에 설립. 인종적으로 우세하다고 판단된 여자들과 주로 나치 장교들 사이에 아기를 낳게 하였다. 나치가 만든 가장 무서운 프로그램 중에 하나로 꼽힌다.

결 론
진화론이 나오기 전에도 경쟁의 원리, 인종차별, 우생학적 사고 등은 인류 역사에 항상 내재되어 있었다. 한국의 과거 역사에도 뛰어난 혈통을 이으려
했던 기록들이 발견된다. 그러나 진화론이 등장하며 이런 사고들이 ‘과학적’이고 사‘ 실’이라는 확신으로 정당화되고 극단적으로 실행에 옮겨졌다. 그리고 이시도로 역사상 가장 잔학한 결과를 남겨놓았다.
나치는 독일을 지배했던 모든 기간 동안에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도록 강요했다. 이런 교육은 그때 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교실에서도 동일하게 가르
쳐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진화론적 사고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 가슴 아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경쟁에 의해 생물의 종이 바뀐 예도 없고, 실제로 자연을 보면 경쟁보다는 같은 종 안에서는 서로 보호한다. 진화론은 과학적 사실도 아니고, 이를 사회에 적용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에서 조차도 진화론을 사실로 놓고 성경을 바꾸는 타협 이론들이 등장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위의 글은 아래 책을 가장 많이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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