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모리스 박사를 추모하며!

Categories: 김무현

Monday, 6 March 2006

헨리 모리스 박사를 추모하며

2006년 2월 25일, 현대 창조과학운동의 아버지이며, 탁월한 성경변증학자 였던 헨리 모리스 박사께서 87세의 나이로 소천했다. 그는 죽는 날까지 저술에 몰두하였고 설교와 강의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으며, 그의 60권이 넘는 주옥같은 창조과학 클래식을 유산으로 남겼다.

하나님께서 마틴 루터를 들어 쓰셔서 타락으로 치닫던 중세 카톨릭 교회를 참 신앙과 말씀으로 돌이키셨듯이, 후대에 헨리 모리스 박사를 지명하여 부르셔서, 인본주의적 진화론과 성서비평학의 영향으로 자유주의로 떠내려 가던 미국의 기독교에, 다시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기록된 그대로 믿으려 하는 근본주의및 보수 복음주의의 새 물결을 일으키셨다.

그 때, 이미 영국과 독일의 교회들은 인본주의, 진화론과 자유신학의 영향으로 날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1925년 그 유명한 스콥스 재판(Scopes trial)이후로는 진화론이 과학적 사실로 공인되어 가고, 모세의 창세기를 포함한 오경은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신화정도로 취급되기 시작하였다. 그로 인해 그 당시 믿는 과학자들의 모임이었던 ASA(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마저도 진화론 일색의 칼라로 바뀌게 되었고, 신학자들은 진화론이 사실이라는 가정하에 간격이론(gap theory)및 날-시대 이론 (day-age theory)등 타협이론들을 정론으로 받아 들이기 시작하였다.

이렇듯 인본주의적 진화론과 자유신학의 위세에 눌려 강한 압박을 받고 있었던 보수 복음주의에 숨통을 터 준 책이 바로 헨리 모리스 박사 (죤 휘트콤 박사 공저)의 창세기 홍수 (The Genesis Flood, 1961)이다. 이 명저를 기반으로 창조과학자들은 창세기의 기록과 같은 대격변의 패러다임 안에서 지각의 퇴적층과 화석들을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자유주의및 복음의 세속화에 의분을 느낀 헨리 모리스 박사는 계속해서, 1967년, 창세기와 노아홍수를 계시된 말씀 그대로 믿는 창조과학자들의 모임인 CRS(Creation Research Society)를 진수시키고, 1970년, 창조과학 연구 대학원인 ICR(Institute of Creation Research)을 설립하여 창조과학의 기반을 닦기 시작하였다.

헨리 모리스 박사는 토목공학자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ASCE (American Society of Civil Engineers) 최고 명예인 Fellow에 선출되었으며, ICR 설립 바로 전까지 명문대학인 VPI(Virginia Polytechnic Institute) 토목공학과의 Chair Professor로 재임했었다. 또한, 일반 수리학의 명교과서인 Applied Hydraulics in Engineering의 저자이기도 하다.

현재, 창조과학 변증및 선교로 그 활동이 매우 활발한 AIG(Answers In Genesis)의 원장인 켄 햄은 그의 사역의 시발점이 바로 헨리 모리스 박사의 책 창세기 홍수라고 간증하고 있다. 필자가 창조과학및 성경변증의 개인적 소명을 갖게 되는데, 결정적인 동기 부여를 한 책들도 바로 헨리 모리스 박사의 저서들이다.
헨리 모리스 박사는 이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창조주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 안식하고 있으리라. 그가 믿음의 거장으로서 유산으로 남긴 탁월한 저서들과 삶의 본들은 오늘날 이 땅에 남아 있는 우리 믿는자들에게 다시 한 번 성경을 수호하는 전도자로서의 새로운 다짐과 각오를 하게 한다.

Author: 김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