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샤이보의 죽음을 바라보며!

Categories: 김무현

Tuesday, 11 October 2005

테리 샤이보의 죽음을 바라보며

2005년 10월7일 조선일보 기사에 의하면 “교통사고로 2년간 혼수상태에 있다가 깨어난 30대 이탈리아 남성이 자신이 혼수상태에 있는 동안 주변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알아듣고 있었다고 말했다(로이터통신)”는 것이다. 맨 처음 ‘엄마’라는 말로 입을 열기 시작한 그는 “의사들은 내가 의식이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모든 것을 알아듣고 절망감에 울었다”고 말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그는 또 자신이 깨어난 것은 “기적”이라면서, 자신의 예를 볼 때 혼수상태의 환자들에 대한 안락사는 정당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2005년 미국 10대 뉴스중의 하나는 단연코 테리 샤이보의 안락사 사건이다. 샤이보는 15년 동안 심장발작으로 인한 뇌기능 손상으로 식물인간처럼 살아 왔었다. 위와 연결된 튜브를 통하여 음식물을 주입시켜 생명을 유지해 왔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주법원에 그 영양공급 튜브를 제거하여 그녀를 안락사 시켜 줄 것을 청원하였고, 주 법원은 그 청원을 받아들여 튜브 제거 명령을 하였다. 이에 충격을 받은 샤이보의 부모는 그 명령을 철회시켜 줄 것을 법원에 청원하였고 부쉬 대통령을 포함한 기독 보수 진영의 많은 노력이 있었으나 끝내 시간부족으로 그 결정을 뒤집지는 못하였다. 그러는 와중에 연일 방송의 톱뉴스로 보도 되었고, 여러 명의 독지가들이 샤이보가 죽을 때까지의 치료비를 자신이 전담하겠다고 자원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굶어 죽고 말았다.

이 사건은 생명의 존엄성과 안락사 문제에 대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극심한 고통 중에 죽어가는 회복 불능의 암 말기 환자가 자신의 동의로 더 이상의 치료행위를 거부하는 정도의 문제와는 차원이 아주 다르다. 튜브 제거 직전의 샤이보는 육신적으로는 아주 건강하였고 표정을 통한 감정표현도 가능한 상태였다. 그리고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튜브를 제거하는 것에 그녀가 동의하는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남편은 이미 백만불 이상의 생명보험금을 받았고 이미 다른 여자와 동거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리고 안락사를 시킨 것도 아니고 오히려 고통 중에 굶어 죽게 만든 격이다. 하여튼 이러한 일종의 살인 행위가 대통령과 수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법원의 명령으로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사건이 이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이와 유사한 상황들에 대한 중요한 판례로서 그 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극심한 신체/정신질환이나 치매상태로 자신의 정상적인 사고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명령이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성경은 인간이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불어놓은 영적인 존재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생명을 주시는 분도 거두시는 분도 창조주 하나님임을 강조한다.

생기를 주장하여 생기로 머무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자도 없고 (전도서 8:8)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사도행전 17:24,25)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관점은 다르다. 프랜시스 쉐퍼는 안락사의 문제도 결국 진화론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만일 사람이 인간공학의 수용가능성을 제안했던 프랜시스 크릭이 말하는 그런 유전자적 기계라면, 인간은 비인격적인 것 + 오랜 시간 + 우연의 총합에 불과하다. 더 확장한다면 복잡한 에너지 소립자에 불과하다. 그래서 바로 우리시대는 인간의 삶의 고귀함을 무시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으로 우리는 태아를 낙태시켜 죽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인들에게 안락사를 소개할 것이다. 전자는 이미 실행되고 있는 것이고 후자에 대한 문도 열렸다.”

진화론자이며 인본주의자인 프린스턴 대학의 생윤리학(Bioethics) 석좌교수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유전적 결함이 있거나 심각한 장애자인 신생아의 경우 그 아기가 스스로 생각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비인간 (“non-person”) 으로 간주하여 부모에게 아기를 합법적으로 죽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한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어느 나이에서든지 심각한 장애로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그 가족들이 판단하게 되면, 법적 조치를 받지 않고 죽일 수도 있음을 허용해야 한다고 대학교 강단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이비리그의 일류대학에서 이러한 것들이 엘리트 학생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섬뜩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안락사가 허용되고 있는 네덜란드의 경우 1년에 2,700명 이상이 안락사로 죽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중 50% 이상이 죽는 당사자는 그 사실을 모른 채 행하여진다고 한다. 네덜란드 암전문병원의 통계에 의하면 말기 암의 고통으로 안락사를 원했던 환자 중의 98%가 카운슬링이나 효과적 진통요법 후 다시 마음을 바꾸었다고 한다.

테리 샤이보와 같은 능동적 안락사는 분명 비성경적이다. 하지만 크리스천 진영 내에서도 장기간 뇌사상태의 경우와 같이 소생이 불가능하고 오랜 기간 복잡한 의료기기에 의존하여야만 겨우 물리적인 생명의 연장만을 할 수 있는 경우 (본인과) 가족들이 믿음 안에서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나님께서 생명을 취하시도록) 해주는 것이라면 그것을 비성경적이라 단정 지을 수 있겠느냐 하는 의견도 적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위의 기사에서 보았듯이 2년 동안이나 혼수상태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회복되는 그 가능성을 누가 판단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생명에 대한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들만이 인간적 편의나 경제적 압박 때문에 행해지는 안락사의 유혹과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의 방법으로 생명을 자의 또는 타의로 탄생시키거나 종결시키는 행동은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임을 꼭 기억하기 바란다. (낙태와 배아줄기세포, 인간복제도 같은 맥락으로 바라 볼 수 있겠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 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갈 지라. 주신자도 여호와시여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1:21)

Author: 김무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