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과학자 – 파스퇴르

Categories: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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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퇴르 우유’로 널리 알려진 위대한 창조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는 아마추어 미생물학자였다. 원래 전공이 화학이었는데 현미경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결국은 미생물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파스퇴르 우유’는 그의 연구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다. 버터밀크(butter milk)에서 추출한 미생물이 신선한 우유를 시큼하게 만들지만 열을 가한 추출물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관찰하였다. 이 열처리 과정이 그의 이름을 딴 “파스퇴르 살균법”(pasteurization, 일명 저온살균법)이다. 이 살균법은 높은 열을 가하면 안 되는 포도주나 맥주의 살균에도 중요한 과정으로 사용되고 있다. 파스퇴르의 친구들은 이 살균 특허(US patent 135,245, 1873년)로 그가 큰 부자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그는 자기의 발견을 기꺼이 사회에 돌렸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야 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고 믿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저온살균법이 성공을 거둔 이후 파스퇴르는 프랑스의 양잠(누에치기)업을 초토화시킨 질병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파스퇴르는 병균(germs)이 누에를 병들게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는 전염되어 있는 모든 누에와 뽕나무들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병균에 감염되지 않은 알들을 골라 프랑스의 양잠업을 다시 일구게 하였다. 이 발견은 뒤에 소개 할 죠셉 리스터(Joseph Lister)의 발견과 더불어 현대의학의 기초가 된 세균이론(germ theory)의 근거가 되었고 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건지고 있다.

파스퇴르의 여러 분야의 실험들 중에서도 가장 스릴 넘치는 것은 탄저병 백신(anthrax vaccine) 효과를 직접 대중에게 보여 주는 실험이었다. 탄저병은 최근에 테러 목적으로 우편을 통해 배달 되기도 했던 생물학적인 독극물이다. 당시에는 수의사들을 포함해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작은 균이 큰 동물들을 죽일 수 없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들은 파스퇴르의 생각을 비아냥대고 있었다. 파스퇴르는 그들이 보는 앞에서 25마리의 양들에게 먼저 백신을 주사하고 후에 탄저균을 주사했으나 단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그러나 백신을 맞지 않은 25마리의 양들은 다 죽고 말았다.

탄저병 백신을 공중 앞에서 실험 한 다음 날 신문은 백신을 맞은 양들 중에 몇 마리가 아픈 것 같다고 보도를 하였다. 파스퇴르는 식사를 할 수 없었다. 아마 기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날 이 실험을 요구했던 수의학회지의 편집장으로부터 전보가 왔다. “백신 맞은 양 중에서 아픈 양들은 완전히 회복 되었음. 백신 맞지 않은 양들은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음. 경탄할만한 대성공임.” 이 후로는 아무도 세균이론에 대해 심각한 도전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파스퇴르의 광견병 백신(rabies vaccine) 개발은 뜻하지 않게 성공을 거두었다(1885년). 한 아홉 살 소년의 엄마가 파스퇴르를 급하게 찾아 왔다. 자기 아들이 미친개에 물려 죽게 되었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아직은 그 백신이 동물실험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쓸 수 없었다. 그러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그아이에게 주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10 일 동안 파스퇴르는 먹지도 자지도 못하
고 자기 일도 제쳐두고 그 아이의 침상 곁을 지켰다. 후에 그 소년은 세계적인 백신 연구기관인 파스퇴르 연구소의 연구원이 되었다.

파스퇴르는 화학 분야에서도 획기적인 공헌을 하였다. 생물체에서 추출한 주 석산(tartaric acid)이 녹아 있는 용액은 빛을 회전시키는데 반해 실험실에서 만든 주석산은 똑 같은 화학적 구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빛을 회전시키지 않는 것을 발견하였다. 결국 그는 화학적인 구성 성분은 같지만 구성 원자들의 위치가 서로 다른 광학적 이성체(optical isomer) L-형과 D-형이 있음을 세계 최초로 보
고하여 영국 학술원(Royal Society)에서 메달을 받기도 하였다(1856년).

이런 놀라운 업적과 인간성만이 파스퇴르를 위대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그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믿음이었다.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자연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나는 더욱 더 깜짝놀랄 창조자의 손길앞에 서게 된다.” 가장 완벽하게 그의 전기를 쓴 그의 사위는 그를 ‘하나님과 영원에 대한 절대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영국의 유명한 외과 의사인
파겟(Dr. Stephen Paget)은, “그의 영적인 삶이 과학자로서의 경탄할만한 삶에 결코 뒤지지 않는 한 사람이 여기 있었습니다.”라
고 했다. 그는 위대한 과학자요 진실한 크리스천, 진정한 창조과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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