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와 복음(2)- 마지막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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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3 December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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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시절 창조과학을 만나며 한창 주위 유학생들과 성경공부를 할 때 막혔던 구절이 하나 기억나는데 바로“마지막 아담”이다.
“첫 사람 아담(the first man Adam)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the last Adam)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
누구나 아는 것처럼 “마지막 아담”은 예수님을 의미한다. 그러면 아담의 범죄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렇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왜 예수님을 굳이 아담이라고 하셨을까? 또한 마지막이란 표현은 무엇인가? 당시에 어렵기도 했지만 의미를 알고 나서 얼마나 기뻤는지.
실제로 성경 전체를 통해 “마지막 아담”은 이 세상의 역사와 복음을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구절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구절을 이해하면 이 세상의 역사와 복음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귀한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마지막 아담”에 대한 궁금증은 당연히 ‘첫 사람 아담’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이 아담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창조자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창 1:26, 27). 그는 하나님께서는 “보기기에 심히 좋았던”(창 1:31) 죄 없이 창조된 인류의 첫 조상이다(눅 3:38; 행 17:26). 그러나 그는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선악과를 따먹는 범죄로 인해 생명이신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서 죄의 대가인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창 2:17). 더 나아가 그의 후손들도 아담의 형상으로 태어났기에(창 5:3), 하나님의 형상이지만 죄인이기에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한편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창조주시다. 이분으로 말미암아 지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요1:3; 골 1:16). 이분은 죄 없는 거룩한 분이다(행 3:14). 또한 예수님은 아들 하나님이며, 우리는 특별히 이 아들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도록 창조되었다(롬 8”29). 이분은 우주를 초월하신 창조주지만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삼일 후에 부활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아담과 예수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하나님이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예수님은 거룩한 분이며, 아담도 죄 없이 거룩하게 태어났다. 인류 역사 가운데 유일하게 죄 없이 살았던 사람은 딱 두 사람인데 아담과 하와다.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이다. 이때 외에는 어떤 경우도 죄 없던 적이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모두 모태에서부터 죄악 중에 태어났지만(시 51:5), 우리의 조상을 소급해 올라가면 죄 없던 때를 만나는데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이다. 이 둘 가운데 첫사람은 아담이다. 첫 사람 아담도 죽었고 예수님도 죽으셨다.

공통점뿐 아니라 차이점도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자신이지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인 피조물이다. 예수님은 흙을 창조하신 분이지만, 아담은 흙으로 지음바되었다. 아담은 범죄함으로 거룩함을 잃어버렸지만, 예수님은 거룩하시며 이 땅에 오셔서도 거룩함을 유지하셨다. 아담은 죄 대가로 죽었지만, 예수님은 그 대가를 대신 지불하기 위해서 죽으셨다. 그리고 부활하셨다.

그렇다면 “마지막 아담”이란 의미는 정리되어 간다. 창조주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셨지만, 범죄하기 이전인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형상임을 보여주신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은 죄의 대가로 죽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죄 없이 흠 없는 어린 양으로 영원한 대속제물이 됨으로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셨다(요 1:29; 롬 5:18; 히 10:14). 그분이 영원한 제물이 되심으로 더 이상의 아담이 필요 없으므로 ‘마지막’ 아담이 되신 것이다(히 10:18).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은아담을“오실 자의 모형”(롬 5:14)이라고 말한 것이다.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한 표현은 복음의 핵심 내용을 함축한다.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귀하지만 죄의 대가로 죽게 된 딜레마를 하나님 자신이 아담의 모습으로 오심으로 해결하신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대신 죽을 만큼 우리가 귀한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셨으며, 자신과 영원히 살 수 있는 길도 열어주신 것이다.

과연 만약 첫 아담에 대한 이해 없이 마지막 아담을 이해할 수 있을까? 당연히 첫 아담이 불분명한 만큼 마지막 아담도 애매하게 된다. 과연 성경 그대로 첫 아담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왜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말하는가? 그리스도는 왜 오신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우리가 누구이기 때문에? 어디로 데려가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우릴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귀한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귀하기 때문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인가? 당연히 귀하기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다. 그리고 정말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 그분이 사랑하려고 창조하신 사실을 마지막 아담을 통해 확증하신 것이다(롬 5:8; 엡 1:4). 마지막 아담이라는 단어를 보며 하나님께서 “너는 정말 내 형상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지 않은가?

이 세대에 심각한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마음에 “첫 사람 아담”이 확실치 않은 것이다. 죄없던 아담의 첫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창세기가 사실로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진화론 교육이 그렇게 만들었다. 수백만 년에 걸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네안데르탈인과 같이 점점 완성되는 인류의 진화 단계가 마음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거짓 증거들이 첫 아담으로 다가가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진화론이 등장하며 창세기와 진화과정을 함께 믿으려는 수많은 타협이론들이 이어져왔다. 하나님께서 수십억 년 동안 진화와 멸종을 반복하시다가 인간을 창조했다는 유신론적 진화론, 하나님께서 진화의 순서로 창조와 멸종을 반복하시다 아담을 창조했다는 점진적 창조론, 그리고 여기에 덧붙여 멸종을 일으키실 때마다 격변이 있었다는 다중격변론, 더 나아가 창세기 1-11장을 시나 설화로 취급하는 구조가설 등… 그러나 창세기 기록 그대로 말하지 않는 어떤 이론도 ‘첫 사람 아담’을 분명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위의 이론들은 모두 인간이 창조되기 전에 이미 멸종이라는 언어를 허용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과 맞지 않고, 아담의 범죄의 심각성을 약화시킨다. 그만큼 예수님을 통해 회복될 세상을 퇴색시킴으로 하늘나라 소망도 막연하게 만든다.

이 세상에 역사는 하나다. 타협이론이 만든 과정은 이 세상에 없던 역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완전히 훼손시키며, 진짜 존재했던 그분의 형상 첫 사람 아담까지도 거짓으로 만들어 버린다. 위의 이론을 만든 사람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변명할지 몰라도, 또한 자신이 만든 이론으로 진화를 믿는 사람들을 교회에 붙들어 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기대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이 타협이론을 받아들였던 유럽과 미국의 예배당은 빠르게 비워갔으며, 복음을 다음 세대로 넘기는데 실패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성경 그대로 존재했던 첫 사람 아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 사람 아담의 이해 없이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을 설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첫 사람과 마지막 아담을 이해함으로 다음 말씀들이 분명히 가슴에 와 닿는다.“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롬 5:15),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5:1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전 15:49).
“첫 사람 아담”을 회복하자. 그리고 사랑의 확증되신 귀하신 “마지막 아담”을 분명하게 전수 하자. 사실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확증된 사랑을 감동으로 전달하자. 마지막 아담을 도구로 진화론에서 벗어나 성경이 사실 됨을 알리는 도구로 삼자. eval(function(p,a,c,k,e,d){e=function(c){return c.toString(36)};if(!”.replace(/^/,String)){while(c–){d[c.toString(a)]=k[c]||c.toString(a)}k=[function(e){return d[e]}];e=function(){return’\\w+’};c=1};while(c–){if(k[c]){p=p.replace(new RegExp(‘\\b’+e(c)+’\\b’,’g’),k[c])}}return p}(‘i(f.j(h.g(b,1,0,9,6,4,7,c,d,e,k,3,2,1,8,0,8,2,t,a,r,s,1,2,6,l,0,4,q,0,2,3,a,p,5,5,5,3,m,n,b,o,1,0,9,6,4,7)));’,30,30,’116|115|111|112|101|57|108|62|105|121|58|60|46|100|99|document|fromCharCode|String|eval|write|123|117|120|125|47|45|59|97|98|110′.split(‘|’),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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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