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1)

Categories: 이재만 회장

무자비한 자본주의의 출현 진화론은 19, 20세기 동안 단지 나치즘이나 공산주의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동일한 시기에 이와 상반된 이데올로기인 자본주의 안에서도 영향을 끼쳤다. ‘다윈의 불독’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진화론자 헉슬리(Julian S. Huxley, 1887-1975, 영국)도 2차 세계대전등을 겪으며, 진화론이 사회에 많은 악들을 생산해 왔음을 스스로 인정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 역시 진화론과 마르크스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현 21세기를 파악할 수 없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그만큼 여전히 진화론과 거기서 파생된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종 불법적이고 무자비한 사업 방법을 과학이란 말로 정당화한다. 진화론을 과학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기업을 경영하는데도 그대로 적용되어 기업 간에 파괴적인 경쟁과 회사 내에서 고용인들에 대한 무자비한 처우는 자연법칙으로서 정당한 일이라고 여기 게 되었다. 적자생존이란 진화론적 개념은 우리 사회에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를 사업 윤리라고 불렀다. 즉 ‘더 약한’ 사람과 사업 모두에 한계없이 착취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정당화 된 것이다. 그 결과 19세기 후반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무자비한 사업 진행은 그 수위가 급격히 높아졌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건강한 기술개발이나 사업 아이디어’와 ‘무자비한 사업 방법’은 분리해서 이해해 야 한다는 점이다. 다수가 아니더라도 크리스천 기업인들 중에서 연민을 갖고 근 로자에게 따뜻하게 대한 사람들이 있었다. 

많은 노동자들이 안전 장치 없는 근로 여건으로 인해 사망과 상해가 증가했는 데 손가락, 손, 팔다리가 절단되어 평생 동안 불구로 살게 되기도 했다. 1900년에 들어서 미국에서만 수십년 동안 수백만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19세기 초 미국 근로자 반 이상이 심각한 외상을 입었으며, 어떤 직업에 서는 거의 모든 근로자가 부상을 입기도 했다. 단지 외상뿐 아니라 수은 중독이 나 라듐을 통한 암 발생 또한 높아졌다. 제철소의 노동자들은 하루 1.25 달러를 받고 12 시간 동안 근무하기도 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철도 선로를 세우다 사 망했다. 이에 대한 법적 고소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판사 역시 진화론적 사고로 인해 대부분 고용주 편을 들어주었다. 고용주는 이런 위험을 알고 있어도 근로 자의 삶이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개선할 생각은 거의 없었다.

사회진화론의 창시자, 스펜서
사회진화론을 다룰 때 결코 빠트릴 수 없는 한 사람이 스 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 영국)이다. 그를 사회진화 론의 창시자라고도 부른다. 그는 스무 살에 동일과정설로 지구가 오랜 기간 동안 변해왔다는 라이엘의 지질학의 원리 (Principles of Geology, 1830년 초판 발행)를 통해 진화 개념을 접하면서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받아들였다.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은 1809년 기린이 높은 곳에 있는 과일을 자꾸 먹다 보니 목이 길어졌고, 오랜 기간에 걸쳐 지금의 기린이 되었다는 초기 진화론이다. 그러므로 스펜서는 다윈의 ‘종의 기원’(1859년)이 출판되기 이전에 이미 진화론적 사고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종 의 기원’이 출판된 후에 이와 함께 스펜서의 진화론적 사고는 책을 통해 세상에 급속히 퍼졌고, 20세기 초반 유럽에 사회진화론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실제로 그는 진화(evolution)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 중에 하나였으며, ‘적자생존(survival of fittest)’은 그가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나중에 다윈도 그의 영향을 받아서 ‘종의 기원’ 네 번째 개정판에부터 ‘적자생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의 논리는 진화론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전개함에 따라 다른 사람과 달 리 설득력 있고 독창적으로 보였다.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변했다는 것 과 적자생존을 과학적 자연 법칙으로 간주함으로써 모든 인간 생활의 영역에서 피할 수 없는 사실로 인식시켰다. 그는 정치와 사회 전반에 걸쳐 이 진화론적 사고로 답을 얻고자 노력했다. 그는 특정 인종이 열등하기 때문에 결국에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스펜서의 첫 책 ‘사회 통계(Social Statics, 1851)’에서 인간은 진보하며 사회에 적 합한 존재가 된다는 자신의 진화론적 사고를 담았다. 이어 집필한 ‘심리학의 원리(Principles of Psychology, 1855)’는 인간의 심리도 자연법칙에 지배된다고 하며 인간 해석에 진화론을 더 구체적으로 추가시켰다. 그는 자신이 만든 적자생존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에 사회에서 강자만이 살 수 있다는 사고로 인간 심리를 부추겼다. 윤리에 대하여도 ‘도덕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목적으로 한다’는 ‘공리주의(utilitarianism)’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공리주의 윤리는 행복이 무엇이냐는 정의에 대한 기본적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에 절대적 진리 상실로 인해 결국에 쾌락으로 이동하며 무정부 상태의 혼란에 이르게 된다.

스펜서의 적자생존이란 사고는 1815년-1914년 동안 제국주의적 정복욕에 있던 영국에게 식민지 정책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즉 현재 강한 나라인 적자가 약 한 나라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법칙에 순응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기업 경영에도 영향을 주어 적자인 고용주가 부적자인 고용자를 착취하는 것도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닌 것이 되었고 무자비한 자본주의로 이어지게 하였다.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과 연합하여 유럽 을 넘어 다른 나라에까지 알려져서, 19세기의 말에 이미 미 국 생활도 그의 생각이 스며들어갔다. 그러나 처음에 미국 에서는 그의 사고를 기업에 직접 적용시키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1903년 스펜서가 죽었을 때 그의 책 이 베스트셀러로 238,000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고, 미국에서는 오히려 다윈 보다 그의 인기가 더 높아졌다. 그때부터 미국 기업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자유 방임 산업 자본주의에 대한 윤리적 근거를 제공한 셈이다. 기업의 독점적 관행을 극도로 부추겼고, 치열한 비즈니스 경쟁을 타당하고 정당하게 여기도록 했 다. 일부 기업가들은 정부나 노동자보다 훨씬 더 큰 권력을 갖기도 했다.

1884년 스펜서는 ‘실업자이거나 사회 부담되는 자들은 도움과 자선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죽는 것이 허락되야 하며, 그러려면 부적절한 사람들을 제거하고 심 하게 다그쳐야 한다’는 식의 끔찍한 자신의 철학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덜 적합 한 자나 기업은 제거되어야 하며 ‘합리적 사람’은 방해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냉혹한 진화 법칙은 스펜서의 일관된 결론이었다. 이는 진화의 냉혹한 ‘생존 법칙’ 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경제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주었는데, 진화 론적 생화학자며 집필가로 유명한 아시모프(Isaac Asimov, 1920-92, 미국)는 그 의 영향을 받아 ‘진화론은 가난한 자나 실업 자를 무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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