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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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자연선택과 적자생존 등에 의해 오늘날의 생물들로 진화되었다는 다윈의 진화론은 깊이 없는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과학적 검증 없이 유럽을 장악해 버렸다. 그리고 진화론이 사회에 영향을 주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다. 특별히 인간이 적자생존과 생존경쟁의 산물이라는 생각은 자신과 타인을 진화론적으로 바라보는데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이에 따른 영향 중에 인종차별(racism)에 대하여 다루어 본다.
인종차별에 대한 사고는 단지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시작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안에 내재된 죄악 된 마음이 드러난 것이기 때문에 오랜 인류 역사 동안에 존재해왔다. 그러나 인종차별을 부추기는데 진화론이 기여했다는 것에는 의심에 여지가 없다.
진화론자의 대부 격이었던 굴드(Stephen J. Gould) 역시 “인종차별을 지지하는 생물학적 주장들이 1859년 이전에도 흔하긴 했지만, 진화론을 수용하게 된 이후로는 수십 배의 강도로 증가되었다”(1977)라고 인정한 바이다. 진화론은 단순한 인종차별을 넘어서 학대, 심지어 대량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진화론적 사고를 갖고 인종차별을 했던 극단적인 예로써 나치의 히틀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히틀러는 유대인, 집시, 타종족 집단을 열등하다고 여겨 그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치 자신들이 특급 인종이며 열등한 인종을 말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이에 대하여 인류학자며 무신론적 진화론자였던 키스(Sir Arthur Keith, 1866-1955, 영국)는 히틀러가 얼마나 진화론을 신봉하였는지 말한다. “히틀러는 진화론이야 말로 국가 정책을 세우는데 진정한 기초를 제공하는 유일한 이론이라고 거의 종교적으로 확신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는 진화론자였다. 독일의 행위가 진화론과 맞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Evolution and Ethics, New York: G.P. Putnam’s Sons, 1947, p. 28-30, 230). 실제로 히틀러는 자연 자체가 특정 국가나 인종의 인구에 개입한다는 자연선택에 대한 개념을 국가 간에 적용시키려 했다(Adolf Hitler, Mein Kampf, published Houghton Mifflin, 1971, Chapter 4). 그러나 단지 히틀러 만이 진화론을 믿고 있던 것이 아니라, 독일 국민 대다수가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연설에 동의했으며 그를 총리와 총통으로 뽑아주었다.

인종차별과 같지는 않지만 진화론을 사회에 적용시킨 공산주의는 사람을 다루는데 진화론적 사고가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공산주의를 시작한 칼 마르크스나 엥겔스는 모두 진화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었다. 엥겔스는 ‘종의 기원’을 읽고 친구인 마르크스에게 다윈을 칭송하는 편지를 썼으며, 마르크스는 자신의 책 속 겉표지에 친필로 “찰스 다윈께, 진실한 추종자로부터”라고 썼다. 또한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장례식 추모사에서 “다윈이 유기체에서 진화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마르크스는 인류역사에서 진화법칙을 발견했다”고 하며 공산주의와 진화론의 연관성을 분명히 언급했다.

공산주의를 실현시키려 했던 스탈린, 모택동, 폴 포트 등은 모두 적자생존의 진화론을 신뢰했던 자들이었으며 각 나라에 어려움을 주었다. 이들은 자신의 기준에 맞추어 자신의 민족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심어주며 적과 민족들을 말살하려 하였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진화론적 사고에 동참했다.

20세기 초에 미국에서도 진화론적 사고를 갖춘 자들에 의해 인종차별에 대한 시도가 있었다. 1863년 링컨 대통령에 의해 법적으로 노예 해방이 이루어졌으나, 실제 삶에는 인종차별이 여전히 존재했었다. 미국의 많은 사람들이 코카시안(백인들로 대표되는 종족)이 가장 높은 종족이라고 여겼다. 그 예로 오타 벵가(Ota Benga, 1881-1916, Central Africa, 피그미족)를 들 수 있을 것이다. 1904년 St. Luis 세계박람회에서 “야만인의 전형, emblematic savage”로 전시되었으며, 1906년에 사상 처음으로 동물원에 수용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보기 위해 동물원을 찾았으며 이에 따라 동물원측은 많은 재정적 수익을 보았다. 몇몇 흑인 목사들이 오타를 보호하였으며 이런 극단적인 인종차별이 진화론적 사고에서 왔음을 경고하기도 했다. 결국 오타는 동물원에서 풀려나기는 했지만 심한 우울증으로 인해 1916년 총으로 자살했다.

진화론자들은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뛰어난 부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는 흑인들이 열등한 비인간적인 존재라는 자신들의 진화론적 편견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류의 진화 단계를 보여주는 그림들을 보며 “과학적”이라고 생각했다. ‘흑인은 힘은 세지만 가장 지능이 낮은 고릴라로부터 진화했으며, 동양인은 오랑우탄에서 진화했고, 백인은 영장류 중에서 가장 지능이 뛰어난 침팬지로부터 진화되었다’는 식의 그림들을 그렸고, 실제로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사고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지구촌 곳곳에서 인종차별과 탄압, 종족학살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었다.

영국에서는 호주 원주민들을 빠진 고리(Missing Link)로 여겨 박물관으로 운송하기도 했으며, 조작된 유골인 필트다운인을 과장해서 보도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자신들이 가장 먼저 발생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시도로써 독일에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을 그 증거로 요란하게 떠벌렸다. 미국의 스미소니안 박물관에는 15,000구가 넘는 유해가 보관되어 있다. 실제로 이들은 모두 사람 아니면 원숭이들이다.

한편, 성경은 사람에 대하여 진화론과 전혀 다른 시작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수천 년 전 처음부터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벽하게 창조하셨으며, 홍수 심판 때 방주에 탔던 노아의 아들과 며느리로부터 지금의 온 인류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일한 혈통을 갖고 있으며(행 17:26), 단지 유전적의 재조합과 바벨탑 사건에 따른 격리로 인해 다양한 피부색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유전학은 인간들 사이에 차이가 거의 없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단지 피부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결과는 성경과 일치한다. 성경에 인종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한 혈통(one blood)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혈통으로써 생물학적으로 서로 결혼하는데 문제가 전혀 없다.

다윈이 신학을 공부했고, 스탈린이 사제 수업을 받았고, 히틀러는 등록 교인이었으며, 중국 모택동은 서구 선교사의 활동 기간에 살았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성경이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을 수용하고 성경을 버린 것이다. 19세기 후반 신학계 안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는데, 진화역사를 사실로 놓고 구약 성경을 신화로 해석하려는 시도이다. 이 시도의 대상에는 창세기가 중심에 있었으며, 자유주의 신학의 탄생이 그것이다. 한편에선 성경을 그대로 믿으면서도 그릇된 해석으로 인종차별에 앞장섰던 근본주의자들도 있었다. 그 유래가 진화론에서 비롯되었건, 다른 데서 왔건,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적용했을 때, 문화적 분열이 생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종차별은 타락한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의 죄가 그 중심에 있다. 인종 문제는 어떤 치료제로도 치유될 수 없다. 어떤 법적 시도나 캠페인도 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진화론의 영향으로 인한 인종차별의 죄는 바른 과학적 사실과 성경적 원리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진화론에서 벗어나 오직 성경에 대한 확신에 따른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

참조
Ham, Kem and Charles Ware, Darwin’s Plantation: Evolution’s Racist Roots, Master Books, 2007.
Morris, Henry M., The Long War Against God: The History and Impact of the Creation/Evolution Conflict, Master Books, 2000.
Morris, Henry M. and John Morris, The Modern Creation Trilogy: Scripture and Creation, Science and Creation, Society and Creation, Master Books,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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