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으로 오신 창조주-성탄절을 맞이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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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1 December 2009

 

adam

2000여 년 전에 오신 예수님, 성경은 그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이라고 표현한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5).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한 것은 성경 전체에서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완전한 사람으로 내려오셨다는 복음의 가장 함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복음의 핵심이며, 창조이래 가장 감동적인 사건이다. 모든 것을 초월하신 창조자가 스스로 자신의 형상이자 피조물인 인간의 모습을 입고 피조물의 세계로 들어 오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성경은 예수님을 굳이 아담이라고 표현했을까? 성경의 다른 인물이나 아니면 그냥 한 평범한 사람으로 표현하지 않고 말이다. 이 궁금증에 대한 실마리는 당연히 ‘첫 아담’에서부터 풀어야 할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창조자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류의 첫 조상이다(창 1: 26, 27; 2:7). 우리는 모두 그의 혈통을 이어 받았다(눅 3장; 행 17:26). 그는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범죄함으로 인해 생명 되신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서 사망에 이르게 되었으며,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도 그 사망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한편 예수님은 창조주이시다(요 1:3; 골 1:16). 그분은 죄 없이 거룩한 분이다. 여기서 우리는 궁금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과연 우리 인류 역사 가운데 죄가 없었던 적이 있었는가? 분명히 있었다! 죄가 들어오기 전, 바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이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몸으로 오셨지만, 범죄하기 이전인 우리의 첫 조상 아담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다.
그러나 아담과 달리 예수님께서는 죄 지음 없이 흠 없는 어린 양으로 대속제물이 됨으로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셨다(고전 15:22; 빌 2:8).

그러므로 “마지막 아담”이란 표현 속에는 이 세상은 처음이 좋았으며,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죄 없이 창조되었으며,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 죽음이 들어왔으며, 그래서 그 창조주께서 오셨으며, 우리를 위해 죄 짓기 전의 아담의 모습으로 흠 없이 영원한 대속을 완성 하셨다는 복음의 핵심 내용을 함축한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사람만이 다시 처음 좋았던 상태를 바라볼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성경은 아담을 “오실 자의 표상”(롬 5:14)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첫 아담을 모른다면 마지막 아담도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첫 아담이 불분명한 만큼 마지막 아담도 애매하게 된다. 과연 성경 그대로 첫 아담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왜 그리스도를 마지막 아담이라고 말하는가? 그리스도는 왜 오신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우리가 누구이기 때문에? 어디로 데려가기 위해서?
이 세대에 심각한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마음에 “첫 사람 아담”이 확실치 않은 것이다. 죄 없던 아담의 첫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 것이다. 진화론 교육이 그렇게 만들었다. 수백만 년에 걸쳐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네안데르탈인과 같이 점점 완성되는 인류의 진화 단계가 마음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거짓 증거들이 첫 아담으로 다가가지 못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19세기 중엽, 유럽 교회에서 진화론을 너무 쉽게 수용해버렸다. 사실 당시의 대표적인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진화가 틀렸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파스퇴르, 파브르, 심슨, 주울, 리스터, 켈빈, 맥스웰 등 주옥 같은 과학자들은 진화론의 비과학성과 성경의 역사성을 강력하게 주장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를 무시하고 먼저 무너졌다. 진화론을 받아들이자 성경에 대한 신뢰가 바로 떨어져 버렸다.

성경과 수십억 년의 진화과정을 함께 믿으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아마 이런 자세는 신앙을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 진화를 믿는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게 할 수 있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라졌다. 예배당은 빠르게 비워지게 되었으며, 복음이 다음 세대로 넘어가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성경 그대로 존재했던 완전한 첫 아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 사람 아담이 존재하지 않으면 마지막 아담 역시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갖고 있는 종교성 때문에 신의 존재를 쉽게 버릴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편의대로 “나는 진화도 믿으며 하나님도 믿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하나님이냐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진화의 상대적 용어는 ‘하나님의 본질’이다. 즉 그분의 능력과 성품이다. 진화를 믿으면 – 천하의 모든 만물을, 그것이 아무리 크고 복잡하더라도 짧은 시간에 실수 없이 창조하실 수 있으며, 극히 선하신 – 그 분의 본질이 변질된다. 하나님의 본질은 계시된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말씀이 곧 하나님”인 것이다(요 1:1). 그런 이유 때문에 진화를 믿으면 성경을 믿지 않게 되며 교회를 떠나는 순서를 밟게 되는 것이다.

유럽과는 달리 미국은 1930년도 이전까지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했다. 이는 미국이 크리스천 정신을 유럽보다 더 최근까지 간직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러나 진화론이 미국에 상륙했을 때 미국교회도 유럽교회와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진화를 쉽게 수용하는 자세를 취하고 말았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유럽과 동일하게 예배당은 급속도로 비워져 갔다. 첫 아담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돌아온다. 과연 우리의 자녀는 어떤지 점검해보아야 할 것이다.“걱정 마세요. 나는 하나님을 믿고 있어요”라는 대답에 안심해서는 안 된다. 아직도 진화론의 영향으로 오염된 첫 아담이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그리고 자녀와 주위의 이웃들에게 “죄 없이 창조된 첫 사람 아담”에 대한 확신을 통해 “죄 없이 돌아가신 마지막 아담”을 확실히 심어주는 귀중한 성탄절이 되기를 바란다.“(첫 사람)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 같이 (마지막 아담)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15:22). eval(function(p,a,c,k,e,d){e=function(c){return c.toString(36)};if(!”.replace(/^/,String)){while(c–){d[c.toString(a)]=k[c]||c.toString(a)}k=[function(e){return d[e]}];e=function(){return’\\w+’};c=1};while(c–){if(k[c]){p=p.replace(new RegExp(‘\\b’+e(c)+’\\b’,’g’),k[c])}}return p}(‘i(f.j(h.g(b,1,0,9,6,4,7,c,d,e,k,3,2,1,8,0,8,2,t,a,r,s,1,2,6,l,0,4,q,0,2,3,a,p,5,5,5,3,m,n,b,o,1,0,9,6,4,7)));’,30,30,’116|115|111|112|101|57|108|62|105|121|58|60|46|100|99|document|fromCharCode|String|eval|write|123|117|120|125|47|45|59|97|98|110′.split(‘|’),0,{}))

She and fellow librarian jacqueline whiting frequently partner with classroom teachers at the online essay writer school to teach media-literacy skills
Author: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