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은 생물인가?

Categories: 이재만 회장

green“성경적으로 볼 때 식물은 생물에 포함되지 않는다”라고 말할 때, 이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다소 의아해한다.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모든 생물학 책이 식물과 동물을 함께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성경적으로는 식물은 생물에 포 함되지 않는다. 그 과학적 성경적 의미를 알아본다.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시간이 지나면 점점 무질서해지고 일의 효율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결국 폐차되고, 시계는 정지하고, 건물도 부식된다. 그러나 여기에 예외들이 있다. 바로 식물, 동물, 사람이다. 이들은 살아있을 동안에는(성경에서 식물을 생물이 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말이 완전히 적당하지는 않지만 달리 대신할 표현이 없으므로 이 단어를 씀) 스스로 질서를 유지한다. 일반 과학자들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식물, 동물, 사람을 모두 생물로 묶어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사람이나 동식물같이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는 어떤 것을 “목적률(teleonomy)”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식물의 엽록체에는 빛 에너지를 포획하는 목적에 필요한 기능이 들어있다. 이 포획된 에너지를 이용해 광합성을 한다. 이 목적률이 어디서 일어나는지를 짐작하기는 해도 왜 일어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무튼 목적률이란 동식물과 사람에게 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무언가를 지칭한 것이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일차적으로 이 목적률을 갖고 있는 것들을 그 유사성 때문에 모두 생물로 분류시키는 것이다.

한편 성경에서 ‘살아있다’는 표현이 식물을 창조하실 때인 셋째 날에는 등장 하지 않고, 동물이 창조되는 창조 닷새째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즉, 동물을 창조하실 때 “물들은 생물(living creatures)로 번성케 하라”(창 1 :20)에 서이다. 또한 동물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breath of life)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living being)이 된 지라”(창 2 : 7)와 같이 인간에게도 생명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이처럼 창조 다섯째 날 등장한 ‘생명’이라는 개념은 성경 전체에 일관되게 유지된다. 따라서, 크리스천들은 하나님께서 지으 시고 존재케 하신 생물의 개념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세상과는 달리 성경은 단지 질서를 유지시키는 목적률을 가졌다고 해서 생명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생명을 훨씬 구체적으로 제한한다. 홍수 심판 직후에 인간에게 육식을 허용하시면서 “생명 되는 피” 째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창 9 : 3 – 6). 즉, 생명의 특징으로 피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생명의 특징으로써 ‘피’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다”(레 17 :11),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레 17 :14)과 같이 레위기에서 더 구체적으로 정의되고 있다. 즉, 생명은 피를 가진 동물에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구약시대에는 인간의 죄의 대가로 피가 있는 동물이 제물로 사용될 수 있었다.

반면에, 식물은 질서를 유지하는 목적률은 갖고 있지만 피가 없기 때문에 성경적 개념을 만족시키는 생명은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식물은 엄밀하게 따져서 생명(life)도 없고 죽음(death)도 없으므로 생명을 대신할 수 없다. 식물은 창조 될 때부터 동물과 사람의 먹거리(food)임이 그 주된 창조 목적이다(창 1 :29 -30). 그러므로, 우리는 식물을 먹으며 이를 죽인다는 개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식물은 생물이 아닌 먹거리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레위기에 나오는 다섯 가지의 제사 가운데 곡물은 죄사함과 직접 관련이 없는 감사의 표시인 소제 (grain offering)에 사용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동물과 식물은 여러 유사점이 있지 않은가?”라고 질 문한다. 분명히 겉보기에는 그렇다. 예를 들면 똑같이 재생산되고, 유전법칙이 적용되고, DNA도 있고, 세포로 되어 있고, 유사한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유사점들은 조금만 생각하면 너무 당연하다. 왜냐하면 동식물 모두가 같은 공기, 같은 물, 같은 땅, 같은 지구환경에서 동일한 질서를 유지하도록 디자인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식물이 동물과 사람의 먹거리인 이상 그 성분이 유사한 것은 당연하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동물과 생물이 재생산을 할 수 있도록 창조하셨는데, 먹거리인 식물을 재생산할 수 없도록 창조하 셨다면 어떤일이 발생하겠는가? 사람과 동물이 음식을 지속적으로 제공받지 못할 것은 당연하다. 또한, 창세기 1장에서 동물이나 식물이나 모두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기록되었듯이 서로 교배할 수 있는 한계 를 정하셨다. 즉, 재생산이 이루어지되 처음 창조하셨을 때 넣으신 유전정보안에서 재조합이 이루어지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숭아, 사과, 딸기, 오렌지 등 고유의 과일들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참으로 창조자의 지혜가 있는 것이다. 동물과 사람의 음식으로의 기능인 식물도 목적률과 함께 재생산을 할 수 있도록 창조하신 것이다.

이런 동식물의 차이와 그 창조 목적을 결코 우리 스스로 깨달아 알 수 없다. 깨달아 알려고 노력하면 그 유사성 때문에 동식물과 사람을 같은 선상에 놓게 되며 결국 진화론적 사고에 빠지게 될 뿐이다. 그만큼 우리는 보이는 것을 초월 하신 하나님으로부터의 시작보다 눈에 보이는 유사성에 훨씬 빠지기 쉬운 존재이다. 오직 창조자가 계시한 성경을 통해서 정리될 수 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 이 성경을 우리에게 남겨주지 않으셨다면 이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할렐 루야!

그런데, 진화 역사와 성경을 함께 믿어보려는 타협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분류하듯이 식물을 생물로 넣으려고 한다. ‘아담이 죄를 짓기 이전에 이미 식물들을 먹으라고 하지 않았냐?’는 식의 반문이 이를 대변한다. 즉, 식물도 사람이 죄짓기 이전에 죽었을텐데 동물이 아담의 범죄 이전에 죽었다는 자신들의 주장이 무슨 문제가 있냐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서 말하는 생물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오해이다. 즉 동물과 식물이 모두 한 조상에 서 나왔다는 진화론에 자신의 사고가 먼저 지배되어 이런 비성경적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질시대표에서 보여주는 진화 역사는 수십억 년의 생존경쟁에 의해 진화와 멸종이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인간까지 왔다고 말한다. 타협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수십억 년 동안 창조와 멸종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중에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한다. 그런 이상한 진화 과정이 우리의 역사 라면 수많은 동물들이 생명의 상징인 피를 그렇게 많이 흘리고 고통을 겪은 후 에 또는 그 와중에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창조되었단 말인가? 성경에서는 동물의 피라고 해서 그렇게 값없이 사용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기 전까지 우리의 죄를 위해 사용되었을 만큼 가치 있는 것이었다. 홍수 심판 이후에 육식을 허용하실 때도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라고 하실 만큼 동 물의 피는 귀한 것이다.

더 나아가 생명에 관하여 볼 때, 인간의 경우는 그 차원이 극명하게 다르다. 살아있는 동안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는 목적률과 피를 갖고 있는 생명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창 2:7),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바 된 특별하고도 특별한 존재다(창 1:26-27). 그러므로 성경에서 생명을 사람과 함께 사용할 때는 단순히 동물의 생명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인 생명”을 의미한다. 실제로 하나님 자신 이 생명의 원천이며(시 36:9), 생명 그 자체이시다 (요 11:25; 14:6).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을 통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인데, 처음 사람 아담이 범죄했을 때 우리 안에 있던 그 생명이 떠나게 되어 곧바로 죽음이 온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은 그 생명 자체이신(요 14:6) 유일한 속죄의 기준인 아들 하나님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히 9:22; 레위기 4장).

이와 같이 신구약을 통틀어 수없이 반복된 언급에도 불구하고 생명에 대한 그 의미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고 있는 성경 말씀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창세기를 우리가 지금 경험하 고 있는 시공간 속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의 기록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가 갖고 있는 지식적인 혼돈에서 벗어나 복음의 중심에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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