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세계관(5) 계몽주의

Categories: 이재만 회장

교회가 타락했을 때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그 타락했음을 알고 이에 반응한다. 중세 교회가 타락했을 때 교회 안에서의 변화는 지난 호에 다루었 던 종교개혁이다. 한편 교회 밖에서 일어난 움직임이 이번에 다루게 될 ‘계몽주의’이다. 종교개혁은 교회 안에서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몸부림인 반면, 계몽주의는 타락한 교회를 떠나 지성으로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탈 교회적 분위기(separation from church)에서 나왔다. 일반적으로 종교개혁과 계몽주의가 시작할 때부터 근대 (modern age)라고 부른다.

계몽주의는 ‘17~18세기 유럽에서 등장한 광범위한 사회 진보적 지적 운동’으로 표 현한다. 그러나 이는 계몽주의 쪽에서 바라보며 정의한 것이지, 성경적으로 보자면 교회와 성경을 배제한 인간의 지성을 통해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움직임이다. 종교 개혁은 중세 교회가 성경에서 멀어지는 상황 속에서 다시 진리로 돌아가려는 몸부림인 반면, 계몽주의는 교회가 타락하자 유럽이 복음을 받기 이전의 그릇된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는(자신들이 이를 인지하든 못하든) 자연적 결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쪽에서 보자면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했던 종교개혁이 계몽주의 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다.

계몽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성을 신뢰했으며 앞으로 점점 좋아질 것이라는 진보 적인 생각을 추구했다. 이들은 그 이성으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있다는 이성 을 최고의 권위로 놓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이성을 통해 바 른 사회가 될 것으로 여겼다. 실제로 이성을 신뢰하거나 진보적인 생각을 갖는 것 자 체를 그릇된 자세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성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인 우리에게 주신 귀한 가치이며,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도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을 빼고 이성으로만 찾고자 한 것이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경 없이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스스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 계몽주의자들은 하나님과 함께 이성을 추구하고자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감에 따라 그들 마음에서 하나님이 점점 사라지고, 자신들의 이성만을 신뢰 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이는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다. 틈새가 들어왔을 경우 그 틈 새를 타고 들어와 결국에는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스라엘도 마 찬가지로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길로 행하여 돌이켜 떠나지 아니하고 여 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으나, 산당만은 철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여 전히 마음을 정하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대하 20:32, 33)와 같이 산당을 남겨 놓았을 때, 결국 그의 후손들은 “유다 각 성읍에 산당 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더라” (대하 28:25) 와 같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는 결과를 갖게 되었다.

계몽주의자들도 결국에는 기독교를 타종교나 미신과 비슷하게 여겼으며, 인간이 바르게 진보하는데 있어서 성경이 걸림돌이 된다고 여겼다. 오늘날 우리가 보듯이 교회에서 진화론을 함께 받아들이는 타협이론을 수용했을 때, 결국 성경은 다른 종교의 경전처럼 되고, 다음 세대가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처음 계몽주의는 영국에서 기독교적 틀 안에서 시작되었으나, 프랑스로 넘어갔을 때는 이미 무신론으로 변했으며 독일로 파급되어 인본주의적 철학으로 발달하게 된다. 드디어 철학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아래 계몽주의자들과 주요 사건을 통해서 그 사고의 변천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영국): “지식이 힘이다”라고 말한 경 험론(empiricism: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을 강조하는 이론)의 시조라 불린다. 그는 “우리 앞에 두 책이 있다. 하나는 성경이며 이는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며, 두 번째 책은 피조물인데 그의 권능을 나타낸다”의 고백과 같이 그는 성경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경험론을 극단적으로 적용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뺀 경험만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결국 하나님을 부정하게 되었다.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방법서설, 1637) 그의 이 유명한 문장은 계몽주의의 원리를 확립한 표현으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사람도 ‘생각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 려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한다. 이 그릇된 한 문장은 계몽주의 자들이 자신을 존재케 하신 하나님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빠르게 흘러가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스스로 유신론자라고 고백했지만 “우주는 물질 로 구성된 거대한 기계이며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 파악될 수 있다”고 여기는 자연주의적 자세를 추구했다. 즉 하나님은 존재하지만 우리에게 영향력을 주지 않는다고 믿는 이신론적(deistic) 신앙을 갖게 되었다.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 영국): 가장 영향력 있는 계몽주의자였으며 인식론의 창시자로 불린다. “인간의 마음은 본래 백지와 같은 것으로… 인간에게 지식과 추리를 주는 것은 경험뿐이다” “계시의 개념을 부정하지 않지만, 인간의 이성으로 계시를 판단해야 한다”. 그 역시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했으나 우리의 삶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이신론자였다. 헌정민주정치와 자연권 리를 주장함으로 영국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웠고, 미국 독립선언문(1776년)의 기초를 세운 제퍼슨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1688 영국):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명예롭게 이루 어졌다’라고 해서 명명되었다. 의회 민주주의를 출발시킨 시발점으로 이후부터 왕 조는 의회를 무시하는 권력행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 (1789년)에도 영향을 주었다.

몽테스키외 남작(Charles Montesquieu, 1689-1755, 프랑스): 권력분립에 의 한 법치주의를 제창했으며, 최초로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으로 권력을 나누는 삼권분립설, 입헌 군주 제도론 등을 전개했다.

볼테르(Voltaire, 1694-1778, 프랑스): 관용을 주장하는 상징적 인물로써 기독교에 맞서서 평생 투쟁하는 등 교회와 적 대적 자세를 취했다. 그는 관용 정신 없이는 인류의 발전도 문 명의 진보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관용을 강조했다.

라메트리(Julien La Mettrie, 1709-1751, 프랑스): 의사, 철학자, 첫 유물론 작가 이다. 사물 속에 내재하는 운동성만을 인정하며, “인간은 동물보다 높은 존재일 뿐이며, 일종의 기계일 뿐”이라는 자연주의적이며 진화론적 이론을 폈다. “신의 존재란 실제적 가치가 거의 없는 이론적 진리에 불과”라는 무신론적 자세를 취하며 신학 자체를 부정했다.

(David Hume, 1711-1776, 스코틀랜드): 경험에 의한 것 만을 바탕으로 철학을 펼쳤으며 결국에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결론 하에 회의론자로 변했으며, 결국 무신론자가 되었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 프랑스): 인간 평등 문제를 실천하도록 하는 최초의 사람으로 평가되며 국가는 다수결에 의해 자유와 평등을 확인해 야 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사회의 쇠사슬에 묶여 있다” “자연은 인간을 선량, 자유, 행복하게 만들었지만 사회가 인간을 사악, 노예, 불 행으로 몰아넣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러 귀족 부인과 사귀었지만 오랫동안 동거했던 세탁부 하녀와 결혼했다. 다섯 명의 아들을 모두 고아원에 보내는 등의 자신이 주장했던 자유와 평등이 어떤 의미인지 의아하게 여기게 하는 삶을 살았다.

프랑스 혁명(1789년 5월 5일~1799년 11월 9일): 시민과 농민의 개입으로 폭력적 명을 통해 이전 봉건주의 체제를 전복시킨 사건이다. 미국 전쟁 지원 등으로 대부분 의 국민들이 재정적 곤란을 겪고 있을 당시, 단지 2% 밖에 안되는 귀족 계급과 성직 자들은 여전히 봉건적 특권을 누리고 있었을 때 일어났다. 혁명가들은 루소와 볼테 르 등의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기존의 모순된 사회제도를 비난하고 합리적인 사회제 도의 출현을 주장했다. 그 결과 재산에 상관없이 모든 남자에게 선거권이 주어지는 보통 선거가 제도화되는 프랑스 제1공화국이 수립되었다(1792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근대 계몽주의를 정 점에 올려놓은 독일 관념철학을 확립한 철학자로 평가된 18 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였다. <순수이성비판> (1781년) 은 철학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인식론에 바탕을 두고 이성으로 이성을 갖고 있는 자신을 비판하는 철학을 펼쳤다. 그는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도덕을 추구했으며, 인간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며 그에 합당한 존엄한 대우를 받아 야 한다고 주장했다.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독일): 작가이며 철학자인 그는 루터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결국 “나는 반기독교인(anti-Christian)이나 말뿐 인 불기독교인(un-Christian)도 아니며, 비기독교인(non-Christian)이다”라고 하며 성경에서 마음이 완전히 떠난 자신을 인정했다.

이와 같이 계몽주의자들은 이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성경을 배제하는 우를 범하였다. 실제로 계몽주의가 자유, 평등 등 근대 인류사에 중요한 업적을 이룬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성을 억압했던 중세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사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인위적인 시도는 결코 이 세상에 유토피아를 이룰 수 없었 다. 19세기로 들어가며 진화론을 탄생시켰고, 20세기 초는 세계대전과 이데올로기 로 인해 어려운 세상으로 이어졌으며, 도덕적으로는 더욱 타락했다(이에 대하여는 2018-19년 Creation Truth에서 연재된 ‘사회진화론’을 참고 바람). 이런 인위적인 노력 은 전능하시고 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하고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 나열된 철학자들을 보듯이 계몽주의의 시작으로 결국 철학 시대에 도래했다. 철학은 ‘세계와 인간의 삶에 대한 근본 원리 즉 인생관, 세계관 등을 탐구하는 학 문’(Wiki)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 학문에서 전제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 없이’라는 점이다.

사도 바울이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당시 고대 철학자들과 맞섰다(행 17:18). 바울은 사람에게서 나온 이 철학을 아주 경계할 것을 교회에게 당부한다. 그리고 그 철학을 헛된 속임수와 동일시하였으며 사람에게서 나온 초등학문으로 취급 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philosophy)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 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 2:6-8).

철학이 계몽주의 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벨탑 이후에 인류가 흩어지며 하나님을 잃어버렸을 때 어느 나라나 철학이 등장했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일하 다. 모두 자신들의 전통과 사고로 만든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세시대 이전의 유럽도 마찬가지로 당시 고대 철학이 있었다. 이때도 하나님이 빠진 철학 시대였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렵게 복음의 씨가 심어지고 숭고한 크리스천들로 인해 교회가 세워 지는 열매가 맺게 되었는데, 교회가 타락하자 초등학문인 철학 시대로 다시 들어선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내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교회가 아닌 철학자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빠진 상태에서 철학자들의 등장은 우리 역사 가운데 결코 새롭지 않은 상황이다.

사회가 성경으로부터 멀어짐으로 등장했던 계몽주의는 전적으로 교회에게 책임이 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바른 믿음을 유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도 교회는 다른 곳에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진리는 오직 성경에 있으며, 이를 맡은 곳이 교회뿐인데 교회가 제 역할을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다.
위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언급을 보면서 그 안에 내포된 인본주의적이며 진화론 적 사고를 엿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은 이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배제함으로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진화론 의 기초인 ‘자연주의(naturalism)’로 넘어가기 시 작했다. 이 자연주의에 대하여는 다음 편에 다루기로 할 것이다.


img
img-11.jpg (80 KB)
Author: administrad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