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거릿 생어: 우생학에서 가족계획으로

Categories: 이재만 회장

앞서 ‘우생학을 성 혁명으로 이끈’ 해블로 엘리스(Havelock Ellis, 1859-1939, 영국), ‘현대 성 혁명의 아버지’ 알프레드 킨지(Alfred Kinsey 1894-1956, 미국), 킨지의 계승자 워델 포머로이 (Wardell Pomeroy 1913-2001, 미국)를 다루었다. 이들은 모두 현대사의 성 개념을 급진적으로 바꾸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이번에는 낙태와 불임에 대한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한 여성을 다루고자 한다. 바로 미국에 가족계획(Planned Parenthood)의 설립자인 마거릿 생어
(Margaret Sanger, 1879-1966, 미국)이다.

그녀는 특히 흑인과 같은 열등한 인종 구성원의 개체 수를 줄이는 것에 관심이 있었으며, 운동의 최종 목표는 인류의 진화에 의해 우월한 인종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우생학적으로 열등한 사람에게 산아제한, 불임, 낙태를 적용시키는 것이었다. 그녀는 가족계획 이란 단어를 만들었으며, 미국뿐 아니라 세계 수많은 나라에 영향을 주었다. 생어와 그녀가 이끌었던 운동은 왜 지금 낙태와 그에 비롯된 여러 잔인한 일들이 보편화되었는지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생어에 대하여는 2주 연속 두 번에 걸쳐 나누어 소개하겠는데, 이번 글에서는 그녀의 자라온 환경과 영향, 성적 경향 등을 다루고, 다음 번 글에는 그녀가 평생에 걸쳐 이룩한 가족계획에 대하여 다루겠다.

우생학 요약

세계관을 통해서 여러 번 사용하였지만, 우생학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정리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우생학이란 ‘선별을 통해 인간을 개량하려는 시도’이다. 이는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판된 이래로 진화론을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이고 적극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이다. 우생학이란 단어는 ‘우생학의 아버지’ 골턴(Francis Galton 1822-1911, 영국)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우생학이 등장하면서부터 많은 지식인들은 사회와 개인에게 진화론을 훨씬 적극적 으로 적용시키기 시작했다.

진화론적 영향

다시 마거릿 생어로 돌아와서, 그녀는 독실한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반면에 아버지는 반종교적이었다. 그래도 생어는 14살에 영세를 받을 때 숨어서 받았고, 일요일이면 몰래 성당을 갈 정도로 종교적이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었을 때 그녀는 세속적 휴머니즘과 진화론적 우생학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며 종교에 회의적이 되었고, 가톨릭 교회는 그녀에게 평생의 적이 되었다. 이어서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세속적 휴머니즘 등의 사고를 접하며 그녀는 자신이 믿은 바를 정당화 하려는 열정적인 삶을 살았다.

무엇보다도 진화론과 거기서 파생된 우생학은 생어의 사고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그녀의 삶을 급진적으로 바꾸었다. 예를 들어, 그녀는 “뇌가 발달하지 않은 모든 어류나 파충류는 성(sex)에 대하여 의식적 조절 능력이 없듯이, 덜 발달한 인간일수록 성적 통제를 못한다. 침팬지보다 한 단계 높고 인간으로 가장 낮은 뇌를 가진 호주 원주민들은 성적 통제를 거의 할 수 없다”는 식으로 거침없이 진화론적 사고를 표현했다.

생어는 발생반복설을 주장한 진화론자 헤켈의 영향도 받았는데, 그녀는 ‘수정된 후에 인간 배아는 자궁 안에서 조금씩 진화 과정(곤충, 물고기,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 단계)을 통과한다’와 같이 헤켈의 이론을 그대로 인용했다. 그녀는 진화론을 신뢰하였고 진화 과정 중의 하나인 성 선택을 그대로 믿었다.

생어는 특히 맬서스(Thomas Malthus, 1766-1834, 영국)의 열렬한 추종자 였다. 맬서스는 1798년 <인구론>을 통해 “인구의 자연 증가는 기하급수적인데, 식량의 생산은 산술급수 적이므로, 인간의 빈곤은 자연법칙의 결과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한 사람이다. 다윈이 생존경쟁이 라는 진화 메커니즘의 영감을 얻은 것도 맬서스의 아이디어였다.

여기서 잠깐 밝혀 둘 것은 생존경쟁과 진화는 서로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같은 종 안에서 생존경쟁이 그리 심하지도 않을뿐더러, 경쟁에 의해서 종류가 바뀔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맬서스의 인구론 역시 많은 학자들에게 비판의 대상이다. 인구와 식량의 관계를 너무 단순화시켰기에 실제 적용에는 무리 많기 때문이다. 식량이 부족한 것은 인구가 많아서라기 보다 ‘국가 안에서의 빈부차’ 또는 ‘국가 간의 빈부 차’와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인구가 증가하면 노동력의 증가로 생산력도 함께 증가할 수 있다.

무절제한 성관계

생어는 성관계에 대하여 자유분방했는데, 당시 진화론과 우생학에 주도적 역할을 하던 다른 사람들과도 가까이 교제를 나누었다. 특별히 ‘우생학을 성 혁명으로 이끈’ 해블로 엘리스와 성 관계를 가졌으며, 엘리스의 아내는 남편과 생어와의 관계로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나머지 두 번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생어는 엘리스의 일곱 편의 시리즈인 <성 심리에 관한 연구>(Studies in the Psychology of Sex)를 읽으면서 그와 가까워졌으며, 엘리스는 그녀의 영웅이었을 정도로 많은 영향을 주었다. 엘리스는 진화론적 우생학을 근거로 산아제한의 필요성에 대한 글을 자주 썼으며, 그의 글을 통해 생어는 자신이 갖고 있던 산아제한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그녀는 성 관계를 남성뿐 아니라 여성과도 관계를 갖는 동성애로 넓혔다.

생어는 두 번 결혼을 하였는데, 첫 남편에게 엄격한 기독교적 사고에서 해방될 것을 설득하며 여러 가지 그릇된 성행위나 간음행위 등을 실험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두 번째 남편에게는 결혼하기 전에 자신에게 성적 자유를 주는 계약에 서명하도록 하기도 했다. 결국 두 남편과도 헤어졌는데 그 이유는 모두 그녀의 성적 문란함을 감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가까운 친구였던 루한 (Mabel Doge Luhan)은 “생어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처음으로 육체의 기쁨을 공개적으로 열렬하게 선전했던 사람이었다”고 회상 했다. 그녀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생어가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매우 산만한 어머니였으며, 가정생활을 싫어했고 때때로 이웃들이 그녀의 자녀들을 돌보아야 할 정도였다. 그녀의 이와 같은 성의 문란함은 노년에까지 이어졌는데, 그녀는 열 여섯 살 된 자신의 손녀에게 ‘키스, 스킨십, 심지어 성교까지 괜찮다’고 조언했다.

이전에 소개했던 성 혁명을 이끌었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생어의 성에 대한 사고와 적용은 무절제한 성 개방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살았다. 그녀의 이러한 사고와 삶에서 맺은 결과가 소위 오늘날 부르는 ‘가족계획’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음 글에서 더 구체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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