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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안에서 육식동물이 다른 동물을 잡아먹지 않았을까?

노아방주안에는 모든 육지동물들이 탑승했으므로 초식을 하는 사슴, 염소, 양 뿐 아니라 사자나 늑대 같은 육식동물도 탔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주 안에서 육식동물이 초 식동물을 잡아 먹지는 않았을까? 성경에서는 동물들이 창조될 때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 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두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고 하셨다(창 1:30). 즉 처음에는 모든 동물들이 초식을 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오늘날은 잘 알다시피 사자나 늑대처럼 육식동물이 존재한다. 그러면 이런 육식동물들은 역사 가운데 언제 나타난 것 일까?

동물을 다루기 전에 먼저 사람을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사람이 육식을 하게 된 시점이 정확히 적혀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하나 님께서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먹거리로 주셨다’(창 1:29). 그러니까 사람도 처음에는 채식만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홍수 심판이 끝난 다음에 방주에서 나온 노아에게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창9:3)고하시며육식을허용하신다.

반면에 성경에서 동물에 대하여는 언제부터 육식이 가능했는지 분명한 언급 이 없다. 그러므로 성경의 흐름을 통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 성경은 정결한 짐승 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동물들이 종류대로 방주 안에 탔다고 말 한다(창 7:8). 오늘날 보고 있는 육식과 초식동물이 모두 탔을 것이다. 그리고 홍 수가 끝난 후에 이들 모두는 종류대로 방주 밖으로 나왔다(창 8:19). 즉 방주 안 에서는 지금과 같이 동물끼리 잡아먹고 먹히는 험악한 상황이 아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러므로 동물도 사람과 같이 홍수 심판이 끝난 즉 방주에서 나온 이후에 육식을 하게 된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과학자들은 아직도 육식과 초식동물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잘 모른다. 실제로 육식동물의 대부분은 초식도 함께 하는 잡식이다. 아프리카에서 육식동물 이 사냥을 하지 못할 경우 식물로부터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어렵지 않게 관찰 된다. 심지어 육식동물이 초식만 할 경우에도 건강에 전혀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다. 그 한 예로1900년 초 조오지웨스트뷰(GeorgeWestbeau)부부가 자신이 기르던 사자인 리틀 타이크(LittleTyke)에게 9년 동안 곡물과, 달걀, 우유만 먹였지만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이 잘 자랐다. 더군다나 훈련도 잘 받아서 양이나 병아리 를 보고도 식욕을 전혀 느끼지 않고 함께 놀기도 했다. 고기를 주어도 거절하는 사진이 보도되기도 했다. 단지 이런 예뿐 아니라 육식동물로 분류된 동물들에 게 채식만을 먹였을 경우 생존하는데는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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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테(Tree Ring)는 나무의 나이를 말할까?

거대한 나무를 쳐다보고 있자면 신비스럽기만 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키를 자랑하는 레드우드(Red Wood)는 110m에 달하고, 가장 두꺼운 세코이아(Sequoia) 나무는 직경이 13m가 넘는다. 어떤 나무들은 거의 무한정 사는데 자라면서 두꺼워지며 나이테를 만든다. 나무판자를 보면 무늬가 잘라진 면에 따라 다양한데, 이 나이테로 인한 것이다. 세코이아 나무 중에 두꺼운 것의 나이테는 3,000개가 넘으며, 살아있는 나무 중에 가장 많은 나이테로 보고된 것은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브리스틀콘 소나무(Bristlecone Pine) 인데 5,000개 이상의 나이테를 갖고 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나무는 매년 하나의 나이테를 추가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한글로 ‘나이’테라고 부르는 것 같다(영어로는 tree ring). 나이테는 나무가 성장하는 계절에는 밝은 색을, 덜 성장하는 계절에는 어두운 색을 보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테의 수를 세어봄으로써 그 나무의 나이를 계산해왔으며, 이런 학문을 나이테 연대기학(dendrochronology)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성경을 역사적 사실로 믿고 있는 우리들에게 드는 궁금증 하나가 등장한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쓸어버리셨던 홍수 심판 사건은 성경 그대로 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4400년 전인데 어떻게 그보다 더 오래된 나무들이 있을 수 있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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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만 회장 취임사

창조과학은 진화론에 맞서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경의 정확무오함을 변증하는 사역입니다. 1859년 다윈의 진화론 책인 ‘종의 기원’이 출판된 이래로 교회는 이전에 겪지 못했던 새로운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진화론은 믿음의 근거인 성경의 사실됨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나라마다 진화론을 학교 교실에서 가르침에 따라 지난 150년 사이에 세상의 가장 보편화된 생각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십억 년 간 경쟁과 멸종을 반복했다는 소위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식의 지질시대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현실 속에서 창조과학은 이 거대한 비진리인 진화론과 싸워야하는 영적 사역입니다.

창조과학선교회(Association for Creation Truth)는 지난 33년간 최인식 회장님의 리더쉽과 함께 진화론과 맞서는 사역을 꾸준히 감당해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갖고 진화론의 과학적 문제점을 지적해왔습니다. 이와 같은 확고한 자세를 유지해왔던 것은 저희 창조과학선교회의 자랑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요 감사뿐입니다. 이는 최인식 회장님께서 그 틀을 확고하게 이 중심을 잡아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창조과학선교회를 사용하실 것인지 아닌지의 일차적 여부는 성경에 대한 이와 같은 견고한 자세를 얼만큼 유지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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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브리아기 폭발

화석을 연구하는 고생물 학자들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 중에 하나가 있다면 “캄브리아기 화석 폭발(Cambrian fossil explosion)”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화석이란 단어를 빼고 ‘캄브리아기 폭발’이라고도 함). 화석을 진화의 순서로 책에 모아놓은 지질시대표를 보면 본격적인 화석이 등장하는 시대가 있는데, 즉 고생대 가장 아래 있는 캄브리아기이다. 이시대의 지층에서 대부분의 산호, 삼엽충, 불가사리, 해파리, 조개 등 해양 하등 동물 화석이 갑작스럽게 엄청난 양으로 등장한다. 실제로 지질시대표를 장식하는 전체 화석 가운데 이 시대에서 화석이 가장 많이 발견된다. 그래서 이를 캄브리아기 화석 폭발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진화론적 연대로 5억년 전 경을 말한다. 물론 이 연대는 화석이나 지층을 직접 측정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캄브리아기 지층에서 거의 같은 시기에 모든 주된 동물의 문(門 분류학상의문)이 나타난다. 그러므로 캄브리아기 화석 폭발은 진화론자들에게 가장 골치거리 중에 하나이다. 앞선 조상 없이 바로 등장하는 것뿐 아니라 화석들이 갑자기등장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 완벽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것, 전이형태 화석이없는 것 등 어느 하나 진화론적으로 설득력 있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2002년 사망하기 전까지 진화론자의 대부 격이었던 굴드(Stephen J Gould)는 이에 대한 고백을 여럿 남겨놓았다.
“화석기록은 다윈에게 기쁨보다는 슬픔을 주었다. 그에게 캄브리아기 폭발보다 고민거리는 없었다. 거의 모든 복잡한 생명체들이 동시에 등장한다.” (The Panda’s Thumb, 1980, pp. 238-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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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학의 아담과 원죄

우 박사는 이미 진화 역사를 사실로 정해놓았기 때문에 스스럼 없이 성경 역사에 손을 댄다. 앞서 지적했듯이 유신론적 진화론을 받아들이고 창세기 기록을 고대 근동 창조설화 중에 하나로 보았기 때문에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인 첫 사람 아담과 그가 행한 원죄도 성경에서 벗어나 해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저자는 첫 사람 아담의 창조를 처음부터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창조가 아닌 진화 방법의 결과로 주장하며, 아담의 원죄 문제도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신이 자연선택이나 유전자변이 등과 같이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진화의 방식을 사용해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p. 84).
“아담이 진화의 방법으로 창조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p. 229). 저자는 진화론적 아담을 만들면서 “그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라고 반문하며 이야기를 전개를 해나간다. 그러나 이는 ‘자신’이 진화론을 믿기 때문에 ‘자신 스스로’에게 문제될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진화론에서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그 타당성의 여부를 찾아야 한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아담에 대한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문제될만한 심각한 이유가 있을 뿐 아니라 ‘이유’에 대한 한계를 넘어 ‘반성경적’ 발상이다.
성경에서는 아담이 진화과정 속에 창조되었다는 어떤 분위기도 찾을 수 없다. 성경은 창조과정 가운데 반복적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며, 특별히 인간을 창조하실 때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창 1:31)고 기록하고 있다. 어디에도 수백만 년 동안 진화와 멸종이 반복적으로 발생한 다음 아담이 창조되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진화과정으로 아담이 창조되었다는 생각은 성경과 맞지 않기 때문에 곧 바로 창조자의 성품과 전능하심에 손상을 입힌다. 즉 창조과정에 드러난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이 심각하게 왜곡되는 것이다.